1. 철학을 배우기 시작한다는 것은 어떤 종류의 선택인가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보기도 했으나, 점점 철학이라는 것을 공부하면서 내가 과거에 생각했었던 짧았던 생각들에 대해서 다시 반추를 할 기회를 준다는 것을 보면서, 두 가지 감정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몸서리 쳐지는 과거의 기억들을 묵묵히 바라봐야만 했었던 것과 그리고 그 과거의 것들 속에서 결코 성장 못한 나 자신을 바라보는 두 가지 일들을 반복하는 것의 끝이라는 것을 책을 열 때, 칠판 위의 횟가루를 필사 할 때 자주 느낀다. 비슷한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하지만, 더 이상 비슷한 생각을 하긴 커녕 내 앞에 주어진 것들에 대해서 걱정할 뿐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고 허우적대는 나를 볼 때마다 많은 생각이 든다. 과거의 유산 한 두..
오랜만에 글을 쓸 때, 손 끝에 느껴지는 감각은 연필의 흑연이 부스러지는 느낌도, 볼펜의 볼이 굴러가는 느낌도, 만년필의 촉이 사각거리는 느낌도 아니다. 무미건조한, 타닥거림 속에서 노트북 액정에 글자들을 나타내게하는 자판의, 정확히 말하면 스프링의 장력과 PCB 키보드의 감촉일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글이란 퇴고의 과정 없이 술술 쓰는 생각의 정수라 생각을 하였지만, 요 근래 도통 생각이란 걸 해본적이 없으니 정수를 쏟아낼 일도 없을 뿐더러, 화면 속의 글자들을 자꾸 지워나가고 다시 쓰고 그리고 다음에 어떤 단어를 놓을지에 대해 계속 고심하는 퍼즐 맞추기에 가까우리라. 잘못된 피스 하나를 억지로 끼워 맞추려다 모가 나가는 일들을 반복하다보면, 거기서 거기로 보이는 단어들이 왜 글을 쓸 때에는 딱 맞아떨..
1. 사람을 평가할 때, 감정을 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은 편이다. 그리고,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는 것도 아니다. 자신에게 엄격한지, 남에게 관대한지, 이 두 가지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경우가 많은데, 자신에게 엄격하다면 자신을 성찰하고 성장할 기회를 잡기 쉬울 뿐만 아니라 거기서 얻어가는 것이 많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고, 남에게 관대하다면 남들로부터 자신의 실수를 고쳐나갈 기회를 역으로 얻는 경우가 많기 때문 일 것이다. 사실 이런면에서, 제일 싫어하는 사람의 타입은 자신에게 관대하고, 남에게 엄격한 그런 부류일 것이다. 대부분, 성장도 지지부진할 뿐더러, 주어진 환경에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제대로 얻지 못하는 그런 케이스가 대부분이었고, 만약에 자신의 관대함이나 엄격함의 문제를 깨닫게 될 때 ..
1. 아무 생각 없이 돈이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일본 여행을 계획했다. 작년 12월 경 아키하바라 만다라케에서 프리미엄이 잔뜩 붙은 Syrufit의 Where is my love 앨범을 살까 말까 고민하다 사지 못한 일이 마음에 걸렸는데, 그걸 다시 사기 위해서 가는 건 아니고...... 음.... 음.... 시간이 부족해서 돌지 못했던 아키바의 컴퓨터 매장들과 취미용 소형 로봇 매장들, 그리고 진공관 앰프 전문 취급점들을 한 번 둘러보기 위해서라고 해야할까. 여튼, 아키바의 전 지역을 돌아봐야하니 일주일 정도 시간을 잡고, 비행기표가 제일 쌀 때를 찾아 그렇게 도쿄에 가게 되었다. 3일 후인지 4일 후에 비행기 타고 2시간 10분이면 도착하는 곳이라니, 뭔가 정말 부산이나 대전 같은 데 가는 거랑 정말 ..
개인적으로 On the internet을 상당히 재미읽었는데, 작금의 상황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것이 있어 잠시 올리고자 한다. 원서 내용을 그대로 올리기에는 뭐해서, 한국어 번역판인 인터넷의 철학을 어제 구매하였는데, 번역 퀄리티가 생각보다 나빠서 좀 아쉽다. 계몽주의가 바라는 바는, 구체적인 활동에 종사하면서 그것에 대해 글을 쓰는 소수의 블로거들이 인정받고 널리 읽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블로그의 홍수, 헌신적 행위에 몰입한 사람들은 대체로 논평을 쓰기에는 너무 바쁘다는 사실, 그리고 계몽적인 블로그에 클릭함으로써 그것을 인정하는 일을 하도록 상정된 독자들 자신도 노련하거나 현명하지 못하다는 사실 때문에, 진지한 공적 논쟁에 대해 블로그가 기여하기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블로깅은 언론 및 토크쇼보다..
과거의 글들을 읽으면서 과거의 나와 소통을 할 때마다, 그 당시 내가 얼마나 오만하였고, 잘났었는지에 대해서 살필 수 있는 기회를 자주 갖는다. 하늘을 날라 다니다 사냥감이 나타나면 급속도로 하강을 하여 목표를 내려찍는 매와 같은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데, 보통 이런 수준의 글을 쓰기 위해서는 꽤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여야만 했었다. 예를 들어, 그 당시 다국적 기업의 운영에 관한 리포트를 써 낼 일이 있었을 때, 제품 다각화를 통한 브랜드 이미지의 희석이나 부채를 감수하면서 해외 시장의 과도한 투자들이 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쓸 때, 수 천 페이지에 이르는 기업 투자 보고서와 신용 평가 보고서를 봤어야만 했었다. 그리고, 주어진 정보들을 조합하고, 추론을 통해 기업이 처한..
생각이 없기 때문에 글을 안 쓰는 것인지, 생각을 말하는게 두려워서 글을 안쓰는 것인지 모르겠는 모호한 시기를 지나면서 배운 것은 생각이 없건, 두렵건 그로 인해 나타나는 결과는 비슷하다는 것이다. 글을 안 쓰면, 정확히는 글을 쓰는 과정을 통해 생각이라는 것을 안하게 되면 어느 순간부터 단어의 선택이나 표현 방식들이 한 단계씩 퇴보하게 되는데, 요즘 학교 시험 준비를 하면서 번역이라는 걸 하면 할 수록 그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시험인데, 번역을 하라니! 고등학교 시절 외국어 시험에서 만점을 받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 당시에 내가 배운 건 번역이었다. 단어의 선택이나, 글쓴이의 주장이나, 근거 문장이 무엇인가를 번역을 통해 확실히하고, 글쓴이가 왜 이런 단어를 선택했는가에 대해서 ..
1. 애플뮤직이 묘한 아티스트를 추천해줬다. Ludovico Einaudi 라고 뉴에이지 하시는 분인데, 음악 성향이 딱 맞아서 열심히 듣는 중이다. 월 9.99 달러를 내고 음악 추천 서비스를 사용하는 이유가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한다. 뭐,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만이 없는건 아니지만. 2. 가끔가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회의감이 들 때, 로버트 배로가 생각난다. 음...... 좀 더 극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거시경제학, 정확히는 국가 성장에 관한 것들을 찾고 공부하다가 우연히 알게 된 사람인지라 별로 쓸 말이 없다. 배로가 리처드 파인만의 강의를 들었고 아마도 이 사람 덕분에 물리학 때려쳤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정도는 이야기할 수 있긴 하지만, 여하튼, 나에게 제일 큰 충격을 줬던 것은 이 ..
시험 기간이란 짧은 자유 속에서, 열심히 공부 중이다. 수업을 잘 안 듣고 필요한 부분만 기억해두는 습관 덕분에 수업 슬라이드를 처음부터 끝까지 필사하고, 텍스트북의 연습 문제를 모조리 풀면서 시험 대비를 하고 있는데 사실 이처럼 비효율적이고 재미없는 일이 어디있을까라는 생각이 잠시 든다. 메모리 구조와 같은 것들을 외운다고 해서, 그걸 설계를 할 것도 아니며, 심지어 설계를 한다고 해도 이 정도 수준의 추상화된 것을 갖고 제대로 작동되는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뭐, 그래 회로이론과 같은 것을 배우고, 기본적인 플리플롭들을 이해하면 추상적으로 나타낸 메모리를 설계를 어떻게든 해 낼 수는 있겠지. 요 근래 스터디를 하면서 VHDL로 캐시 컨트롤러를 만들고 있으니 뭐 잘 배웠다라고 해야하나? ..
하루 동안 내 정신이 얼마나 말짱한지를 측정하기 위해 매일 체스를 둔다. 보통, 정신 상태가 괜찮다면 3~4수에서 5~6수 정도를 앞보고, 정신 상태가 나쁘다면 상대방의 다음 수도 예측을 못하거나 잘못 세운 논리 속에서 전진하는 말들이 하나 둘씩 잡혀나가기 시작한다. 보통 하루에 2~3번씩 이런 내 상태를 확인하기 위한 일들을 하는데, 그래도 2년간 꾸준히 체스를 뒀는지 lichess.org에서 1500대 중후반의 레이팅을 찍고 있다. 뭐, 그래 상위 50%이자 하위 50%인 그런 애매한 위치 속에서 체스를 두고 있는 것이다. 이런 하루의 상태를 측정하기 위한 일을 하는 건 아마도 내 정신 상태가 상당히 큰 폭으로 오락가락하며, 체력이라던지 대인 관계에 관련된 일들이 있다던지, 남들이 생각치도 못한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