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하루하루

2016.04.05

하루 동안 내 정신이 얼마나 말짱한지를 측정하기 위해 매일 체스를 둔다. 보통, 정신 상태가 괜찮다면 3~4수에서 5~6수 정도를 앞보고, 정신 상태가 나쁘다면 상대방의 다음 수도 예측을 못하거나 잘못 세운 논리 속에서 전진하는 말들이 하나 둘씩 잡혀나가기 시작한다. 보통 하루에 2~3번씩 이런 내 상태를 확인하기 위한 일들을 하는데, 그래도 2년간 꾸준히 체스를 뒀는지 lichess.org에서 1500대 중후반의 레이팅을 찍고 있다. 뭐, 그래 상위 50%이자 하위 50%인 그런 애매한 위치 속에서 체스를 두고 있는 것이다.


이런 하루의 상태를 측정하기 위한 일을 하는 건 아마도 내 정신 상태가 상당히 큰 폭으로 오락가락하며, 체력이라던지 대인 관계에 관련된 일들이 있다던지, 남들이 생각치도 못한 것들에 의해 영향을 받기 때문일 것이다. 내 자신은 그냥 그저 그런 상황이거나 약간 힘든 상황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체스 같은 논리적인 사고를 필요로 하는 것을 해보면 내가 한 치 앞도 못 보는 그런 상황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 빠져있다는 것을 느낄 때면, 체력 문제라면 잠을 자고, 외적 요인에 의한 문제라면 외적 요인을 해결하거나 아님 피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피하는 쪽을 선택하게 된다.


요 근래, 나는 체스에서 제대로 이긴 적이 없다. 대부분 상대방이 큰 실수를 하거나 나와 같이 적당히 플레이를 했기 때문이었지, 작정하고 체스를 두는 사람과 만나면 레이팅이 낮건 높건 간에 처절하게 진형이 무너지는 꼴을 봐야만 했었다. "뭐 그래, 이런 상황이 지속 될 수도 있지 뭐. 이런 고비 한 두 번 넘어보는 것도 아니고"란 생각을 하고 적당한 시점에서 쉬어야했지만, 그렇지 못하고 계속 늪에 빠진다는 느낌 속에서 나는 뭘 어쩔 줄을 몰랐다.


뭐 이런 느낌에 익숙해지면 익숙해질 수록, 지쳐있는 상태에 정상적인 것처럼 느끼기 시작한다. 현실 감각이 떨어지고, 주변 변화에 반응이 느려지고, 뭐 이런 저런 것들의 자잘하지만 치명적인 변화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그것들에 점점 익숙해져가는 것이다. 아마도, 예전에 몇몇 가지 일 덕분에 이런 익숙함이란 게 무엇인지에 대해서 잘 알 수 있었는데, 그 일이 끝나고 몇 개월이 지난 지금 그 상흔이 없어질 기미를 보이지를 않는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점점 더 상황이 나아지고 있긴하다는 징표가 곳곳에 보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음. 그래 오늘만해도 어떻게든 후배들에게 가르치려고 애쓰는 것이라던지, 뭐 그런 것들. 사실, 주변에 있는 사람이 내가 아직도 이렇게 두 발을 딛고 땅을 서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음, 이런 글을 쓸 생각은 아니였지만, 뭐 그렇다. 그래 힘 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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