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하루하루

2016.04.20

생각이 없기 때문에 글을 안 쓰는 것인지, 생각을 말하는게 두려워서 글을 안쓰는 것인지 모르겠는 모호한 시기를 지나면서 배운 것은 생각이 없건, 두렵건 그로 인해 나타나는 결과는 비슷하다는 것이다. 글을 안 쓰면, 정확히는 글을 쓰는 과정을 통해 생각이라는 것을 안하게 되면 어느 순간부터 단어의 선택이나 표현 방식들이 한 단계씩 퇴보하게 되는데, 요즘 학교 시험 준비를 하면서 번역이라는 걸 하면 할 수록 그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시험인데, 번역을 하라니! 고등학교 시절 외국어 시험에서 만점을 받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 당시에 내가 배운 건 번역이었다. 단어의 선택이나, 글쓴이의 주장이나, 근거 문장이 무엇인가를 번역을 통해 확실히하고, 글쓴이가 왜 이런 단어를 선택했는가에 대해서 서로 비판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 과정에서, 글쓴이의 주장과 문제 출제자의 주장과 그리고 번역을 하고 있는 학생들의 주장들이 서로 교차되면서 영어 지문 하나 놓고서 30분 동안 단어 번역을 잘못했냐느니, 문제자가 원 텍스트 이해를 잘못했냐느니, 왜 여기에 빈칸을 뚫어놓았는가, 5지 선다 문제 중에 중복 정답이 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느니로 싸웠다는 것이다. 그 당시, 학원 선생님이 말했던 말 중 하나가 일품이었는데, "대학 들어가서 나 같이 가르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언젠가는 대학 생활을 하면서 '저 선생 정말 잘 가르쳤었군. 그 때가 그립다'란 생각이 들 것이다"라는 말을 수능을 몇 주 앞둔 고3 학생들에게 하고는 수업 종강을 하신 것이었다. 사실 꽤 오랜기간 동안 그 분이 가르친 수업의 방식에 대해 생각을 할 기회가 많았었다. 재수 시절, 쉬운 수능 덕분에 문제의 텍스트를 이해해서 푸는 것보다 주제어만 보면서 타임어택을 하여 최대한 많이 푸는 것이 더 좋다는 학원 강사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고등학교 시절 유산을 내다버릴 때라던지, 외신을 읽으면서 그 분이 뭘 가르쳐왔는지에 대해 다시 느낄 때라던지라던지 뭐 영어를 읽고 쓸 일이 있을 때마다 고등학교 시절이 희미하게 기억이 나는 것이였다.


그러다, 우연치 않게 교양 과목을 듣다 한 교수님께 빠져 그 분 전공 과목을 요번학기에 신청하였는데, 그 과목의 진행 방식이 텍스트 낭독을 하는 것이였다. 고등학교 시절의 그 학원에서 했던 것과 거의 비슷한, 텍스트 읽고 번역하고, 텍스트 읽고 번역하고 이것을 계속 반복하고, 번역이 잘못되었거나 좋지 못하면 비판을 하는 이런식의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하나의 사상을 이해하는 그런 류의 수업이었다. 하지만, 꽤 긴 기간 동안 나는 이런 류의 번역을 하지 않았었다. 많은 공대 과목은 영어를 쭉 읽고 넘어가도 별 문제가 없었고, 대부분 번역을 한다해도 쉬운 영어에서 그치고 말았다. 이런 식의 번역을 다시 한 번 하려고 보니, 내 단어 선택, 표현력, 해석 능력 모두 떨어져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는데, 내 덜떨어진 뇌가 variation이란 단어를 도대체 어떻게 번역해야하는가를 놓고 그냥 바리에이션으로 쓰지 왜 변주나 변화구, 변동 이런 다양한 한자어 사이에서 저자의 의도와 완벽하게 일치하는 단어가 무엇인가를 고민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문을 던지는 걸 보면 말 다한게 아닌까.


그 당시 학원 선생님의 말은 틀렸다. 뭐, 내가 이과생이고, 결국 공대에 가면 이런 류의 수업을 절대로 들을리가 없어서 그렇게 말을 하신거겠지만, 뭐 아쉽게도 나는 좀 다른 길을 택한 것 같다. 그리고, 나는 대학을 다니면서 좀 더 많은 것을 다시 배우고, 다시 공부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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