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20년도 대충 다 끝나간다. 뭐 한 거 없고 사고만 친거 같은데 말이다...
2. 그냥 예전에 들었던 수업 생각이 난다. 별건 아니고, 인간의 의식(consciousness)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해서 논의라고 해야하나, 뭐 간단하게 말하면, 내가 의식을 갖고 있는 것과 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서 논의를 했었던 근대사상과 현대 인지과학 쪽에 대한 수업이 그것이다. 뭐, 그래서 그걸 왜 지금 이야기를 하느냐고 물어본다면, 요즘 의식이라는게 인간이라는 오토마타의 부수적인 무언가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종종 하기 때문이다. 뭐 이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좀 길지만 짧게 이야기를 하자.
3. 영혼의 존재를 믿는가? 영혼이 존재하고, 육신에 깃들어있다고 믿는가? 그러면, 아마도 -고대부터 지속되어온- 심신이원론을 믿고 있는 것일 것이다. 뭐, 반면, 인간이 입출력 기계에 불과하고 이는 호르몬과 뉴런의 전기 자극 등으로 조합되어있는 피드백 머신이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심신일원론 -정확히는 기계주의-에 가까운 사상을 갖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인간의 의식이 존재하고, 뭐 이게 육신에 묶여있고 육신 그 자체로 정신이 구현된다는 -현대적인?- 유물론적 사고 방식도 있을 것이다.
4. 뭐, 유물론을 그렇게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프로그래머라는 직종에서 기계주의와 유물론적 사고를 강하게 갖고 있거나, 아니면 심신이원론에 대한 극단적인 추종이라는 두 양태로 사람들이 갈리는 걸 많이 보았다. 기계를 다룸에 있어서, 우리 자신도 견고한 기계에 지나지 않으며, 오토마타에 불과하다는 선언을 하는 경향 -결국 무신론으로 이루어지는 논리를 전개하기 위해서다- 이나, 아니면 컴퓨터 프로그램은 분명히 한계가 있으며, 이 때문에라도 인간에게는 영혼 혹은 그에 준하는 컴퓨터로 달성할 수 없는 무언가가 없을 것이라는 확실을 갖게 되는 것이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5.사실 위의 내용을 진지하게 생각했을 때에는 중,고등학생 때였고, 저런 개념이 어떤 철학자에 의해서, 어떤 연구에 의해서 정리가 되어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여러 도서관의 여러 책이라는 단편적 조각으로부터 유추된 그런 것들의 연속이었고, 대학에 오면서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건 역시 인간 정치 체계의 한심함 복잡성과 민주주의의 가능성 이런 거였지만, 뭐 결국 이런 배경에는 인간은 왜 평등해야하는가, 인간은 어디로부터 온 것인가,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선행되어야하는 것도 사실이다. 결국 근대 사상철학을 배웠고 (철학 수업에서 현대사상과 인지론을 먼저 배우고, 역으로 근대 사상을 배우는 미친 짓을 했었다. 근데 이건 컴퓨터 공학에서 취하는 방법이기도 하고) 뭐 그냥 도움은 된다는 느낌이 자주 든다.
6. 여튼, 뭐 이런 쓸데 없는 이야기를 하는가에 대해서, 결국 제일 짜증나는 결론에 도달하였기 때문이다. 몇몇 뇌과학 연구에서 밝히듯이 실제로 자유의지가 없을 가능성에 대해서 논의를 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딥러닝의 발전이나, 설명 가능한 ML 모델이라던지 이런건 둘째치더라도, 많은 부분에서 인간의 의식이라는게 뭔지에 대해서 정의가 제대로 안 되어있는 것도 사실인 것이다. 그렇다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 의식이라는게 내 뇌에서 일어난 의사결정 과정의 부수적인 무언가라고 하면, 나의 의식이 없어도 실제로 나는 행동하는데, 즉 피드백 반응을 보이는데, 어떠한 내 자유의지라는게 없거나 아니면 행동과 괴리된 형태로 존재하게 된다는 것이다.
7. 이딴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책 읽기였다. 몇 년 간 시각 관련 장애로 안과를 갔었고 별의별 검사는 다 했었지만, 거의 모든 검사에서 정상 판정을 받고 있다는 것이고, 문제는 지금까지도 나는 글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는 것이다. 심인성, 즉 중증 우울증과 관련이 있다고 다들 말은 하지만, 실제로 내 망막에는 상이 맺히고, 야구공이 날라오는 것도, 자동차가 오는 것도 느낄 수 있다. 다만, 나는 문장의 전체나 사람의 얼굴 전체를 완벽하게 인식을 하지 못한다. 단어나, 눈, 코, 귀, 입 등의 분절된 형태로 인식하고 이를 재 조합하여 다시 뇌에서 이미지를 생성(상상)하는 형태로 살아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멀쩡하게 행동한다.
8. 이런 면에서 사실 무서운 것은 결국 내가 기억한다, 혹은 내가 인지한다는 자각과 실제로 뇌에 저장된 정보는 다르다는 것이고, 그게 심층 의식에 있을 수 있지만, 아예 다른 것으로 반응하여 행동하는데 인지 능력은, 반응과 행동에 대해서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을 하는 과정을 거치는게 아닌가라는 강력한 심증들이 생기기 때문일 것이다. 즉, 우리가 자각이라고 느끼는 무언가는 냉장고 모터가 돌아가면서 발생하는 소음 (...) 정도에서 벗어나지 않고, 자각이라고 불리는 것 외에서 "진짜 자각하는" 그런게 아닐까라는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1인칭 슈팅 게임을 하는 듯한 느낌? 아니 정확히는 1인칭 영화관에 온 것이라고 봐야겠지.
9. 거기다가 내 몸은 움직이는데, 내 정신은 멈춰있거나 제대로 작동이 안 되는 여러 상황들을 겪으면서, 솔직히 정말 유물론적으로 나를 인식해야하는게 맞는가라는 질문부터, 그냥 육신과 영혼의 연결에 있어 핑이 좀 튀어서 그런거라고 생각하면 몸도 마음도 편하지 않을까라는 자조적 절망까지 할 정도이니 할 말은 다 한게 아닌가 싶다.
10. 여튼, 사실 인공지능이나 ML 쪽에서는 이야기하기에는 엄청 먼 일이고, 현대 뇌과학도 뇌 기능에 대한 전체적인 기능에 대해서도 아직은 갈길이 멀 정도로 연구가 더딘 편이다. 하지만, 그래도, 의외로 가까운 곳에 인지라는 것에 대한 답이 있으리라 생각하며, 언젠간 다시 학문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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