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하루하루

2020.09.13 기술에 대하여

부산으로 내려가는 KTX를 타고 있다. 엉겁결에 출장이 잡혔고, 이게 임베디드 장비를 다루는 거다보니 안 갈 수도 없는 상황이라 이것저것 장비를 챙기고 내려가는데, 이런 일로 부산을 간 적은 거의 없어서 참 기분이 묘하다. 특히, 아직도 RS232가 현역으로 돌아다니고, 그걸로 중앙 제어 시스템 구축하고, 그걸로 프로덕트가 나돌아다니는 걸 보면 레거시라는게 참 무섭다는 생각도 들고, 임베디드 혹은 산업용 장비라는 분야가 참 변하지 않는 기술이라는 생각이 든다.

IoT라는 개념이 등장하기 이전에도, PLC나 RS232, 좀 괜찮으면 RJ45로 통신을 주고 받으면서 움직이는 시스템들이 없었던 건 아니다. 다만, 많은 부분들이 표준화되어 있지 않기에, JTAG, I2C, UART 통신 프로토콜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게 제조사 커스텀을 따르고 있었다는게 문제라면 문제였겠지만, 락인이 일단 걸린 상황에서는 대부분 문제 없이 구축된 장비들로 산업 자동화 시스템으로 확장 시킬 수 있었다. 뭐 결국 산업 표준화가 된 CAN이라던지, 수 만 개의 제조사별 커스텀 규격이 난무하지만 메세지 구조 만큼은 다 동일한 J1939라던지...

제일 최신으로 써본 임베디드 기술이라고 하면 EtherCAT인데, RJ45, 즉 랜선을 꼽아서 이더넷 스택에서 시스템을 돌리는 녀석이다. 장비마다 IP와 MAC이 부여되어있고 (안 되어있을 수도 있다) 이를 이용해서 적절하게 명령어 페이로드 넣으면 알아서 돌아가는 시스템인데, 개발하면서 참 단순하게도 시스템이 돌아가는구나라는 것과 보안 측면에서 어떤식으로 외부 공격을 대응을 할지에 대한 고려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제일 많이 했던 것 같다. 페이로드만 알면 되는 RS232 같은 것과는 쨉도 안 되지만, 역시 오실로스코프나 로직 아날라이저에 의존해야한다는 점에서 해커를 1차적으로 차단(...) 해주는 물리적 보안(...)이 되어있다는 점 때문에 RS232는 공격자가 접근하기 어려웠다면, EtherCAT은 네트워크 해킹하듯이 더미 허브 하나랑 패킷 스니퍼를 돌릴 경우에 참담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통신 관련 보안 설정이 당연히 있지만, 다들 디폴트 값으로 쓰겠지 뭐...)

EtherCAT에 대한  장황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 건 아니고, 임베디드 분야는 2014년 내가 실질적으로 공격을 시작하여 진입하기 시작한 시점에 비해서 보안적으로, 그리고 기술적 변함이 그렇게 많지 않은 부분이라는 걸 말 하고 싶다. 아직도 C/C++, 운 좋으면 Python2.7로 짜여진 코드들이 돌아가고, RTOS나 리눅스가 깔린 시스템들을 헤집어가면서, (종종 운영체제가 없어서 직접 펌웨어 짤 때도 있다) 수 십년 전부터 규정된 전송 규격에 맞춰서 페이로드만 맞추면 되는 상황들을 보면, 내가 디지털 고고학자가 된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하지만, 기술적 발전이 없었다기 보다는 역시 레거시 시스템과의 호환성이나, 기존 시스템을 모두 갈아끼우는게 불가능한 구조적 특성에 기인한 부분들이 이런 특징을 가져온 것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고, 이런 특징들 덕분에 이 시스템이 수 십 년 간 유지보수 되고, 같은 통신 프로토콜을 쓰는 애드온 (혹은 연동 장비)만 갈아끼우면 되는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이런 시스템에 MQTT 연동을 위해, 나름 최신이라는 ESP32, 라즈베리 파이 같은 걸 얹어서, AWS에 로그를 쌓게 하고, 원격으로 상태를 확인하고, 제어까지 가능하게 하는 일들을 우연치 않게 하게 되었을 때 사실 재미와 기쁨을 제일 많이 느끼는 것 같다. 기존 장비들에 애드온 하나 달면, 인터넷에 연결되고, 이제 데이터를 쌓게 되고, 스몰 데이터(라고 해도 연 2~300기가)를 쌓아서, 이를 통해 통계를 내고, 효율화를 이끌어내는 것은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으로써는 정말 자긍심 넘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많은 부분에 있어서 IT는 이런 효율화나 개선을 가져오는가에 대한 질문은 계속 되는 것도 사실이다. IT는 필연적으로 기존 시스템을 개선하거나 효율화 하는 방향으로 밖에 작동 안 하는 구조를 띄고 있는데, 이는 기존 시장의 교란이나 파괴를 가져오게 된다. 예를 들어서 넷플릭스를 보자면, 넷플릭스는 기존의 영화 산업계의 인력, 제작 방식, 배급 방식을 그대로 들고 왔을 뿐만 아니라, 판권을 구입함으로써 기존 시장에 있는 영화를 그냥 들고 오기까지 한다. 기존 영화 산업과 다른 점이라고 하면, 음... 뭐... 영화관이나 비디오 가게를 거치지 않고, 100Mbps 망을 통한 FHD나 4K 영상을 볼 수 있다는 점 정도? 그것 하나만으로 영화관과 기존 대여 시장을 다 파괴해 버렸고, 버릴 것이다. 그러면 넷플릭스는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는 기업이긴한 것인가?

넷플릭스에 대해서 이렇게 부정적으로 말할 필요가 있는가, 기존 영화 배급 시스템 개선이라는 거 자체가 엄청난 일이 아닌가라는 반문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특히, 일본 애니메이션 시장에서는 에니메이터 수가를 아예 엎어버리는 수준이었고, 글로벌 시장에서 VOD 배급이나 BD 배급에 있어서 골머리를 더 이상 썩지 않아도 되게 해 인디나 장르 무비 제작자들의 숨통을 틔워준 것도 사실이다. 이는 규모의 경제에서 오는, 아니 정확히 말해서 플랫폼 사업자의 독점적 지위를 활용한 특징 중 하나이다.

2014년 에어비엔비가 대세가 되었을 때, 기존 경제/경영학 이론으로는 이러한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IT에 의한 효율화는 기존 이론을 뛰어넘었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참 많이 들었다. 그게 컴공이었건, 경영대였건 뭐 다들 똑같은 소리를 반복했고, 컴공 교수들의 콧대는 나날이 높아져갔다. 그 때마다 들었던 생각은 정말로 이런 모델에 대한 설명이 없었는가라는 질문과, 실제로 이 시스템이 정말 제대로 작동되는 시스템인가라는 질문이었다. 그 당시 경영대 중간과제로 에어비앤비의 모델이 어떤식으로 호텔과 경쟁을 하는지, 안정적으로 시스템을 개선할 수 있는지, 이 시스템이 지속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조사를 했었는데, PEST-L 분석을 때려보니 뭐 당연하게도 고급 호텔은 영향을 받지 않고, 저가형 호텔이 영향을 받고, 법적 규제에 따라 에어비엔비의 미래가 달려있고, 경쟁자가 출연하거나 기존에 있었던 호스트가 딴 데로 넘어갈 경우에 대한 대책이 없고, 각종 범죄에 취약하고, 사용자의 일관된 경험을 못 주고~~ 별의 별 부정적인 이야기를 다 했던 것 같다. (같이 과제 했었던 팀원은 그걸 별로 생각한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2020년에 와서, 에어비엔비는 예전의 밸류에이션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 시국에서 여행업이라는 것은 파도 앞의 모래성처럼 안정적이지 못했고, 거기다가 약 6년간의 누적된 신뢰, 안정성 이슈에 대한 사용자의 지속적인 학습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뭐 그 전에, 에어비엔비가 주는 호스트와 여행자의 교류나, 로컬에서의 특이한 경험 같은 화려한 수식어가 있지만, 역시나 이러한 마케팅은 사실 도미토리나 호스텔에서 겪는 거지 같은 경험의 연장선상일 뿐이라는 건 몇 번 써보며 다들 알지 않는가. 에어비앤비는 일종의 도미토리/호스텔과 호텔의 중간 가격을 포지셔닝하고, 전 세계의 방을 임대를 할 수 없으니 방 주인이과 에어비앤비 중개 수수료라는 단기 계약(?)을 통해서 무언가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였을 뿐이다.

이러한 느낌의 문제는 대부분의 IT, 특히 플랫폼 사업자가 겪는 문제이다. 수수료 기반의 제품 판매 정책, 혹은 구독 기반의 판매 정책은 실 현금 흐름 대비 얻는 수익이 적은 편이다. 일단 수수료는 2~30% 씩 물 수는 없는 건 당연한 것이고, 전체 금액의 5~10% 정도가 수수료로 얻는 수익이고, 실제로 인건비와 운용비용을 생각하면, 전체 판매 금액의 2~3%p를 가져갈 수 밖에 없다. 거기다가, 완전 경쟁 시장에서 플랫폼 사업자는 지속적으로 신규 상품을 발굴해 내야하고, 기존 제품의 QC도 보장해야하는데, 문제는 이러한 상품 판매자들은 제3자이거나 실질적으로 컨트롤을 할 수 없는 무언가라는 것이 제일 큰 문제일 것이다. 결국 고급 브랜드보다는 싸고, 저가 브랜드보다는 괜찮은 품질을 제공하는 적당한 수준의 제품을 제공하는 방문 판매업 IT 버전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근데, IT 사업 특성상 이런 제품을 매칭시켜주는 구조를 배끼기는 정말 쉽다. 경쟁자들은 더 싼 가격이나, 더 큰 자본이나, 기존 브랜드 (e.g. 애플 뮤직) 를 앞세워서 성숙해져가는 시장을 침탈하려고 한다. 솔직히, 스포티파이 쓰다가 애플 뮤직으로 넘어가는 건 클릭 수 번이면 되는 거 아닌가?

보통 이런 상황을 타개하는 방법은 별로 많지 않다. 넷플릭스처럼 다른 VOD 사업자들을 깡그리 말살 시키려고 노력하거나, 판권 경쟁에서 출혈을 감수하던가, 독점 계약을 하거나, 아니면 결국 최종적으로 자체적인 영상 제작을 하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 결과적으로 커진 사이즈 대비 수익을 안정적으로 내려면 구독형 모델이나, 수수료 모델로는 살아남을 수가 없다. 이 이유는 사용자의 증가에 따라서, 서비스 유지 보수에 드는 비용이 선형적으로 증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아마도 지수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결국 최종적으로 병렬화에 각종 별의별 테크닉들이 들어가는 거대한 시스템이 하나 탄생하는 것이다.

요즘 드는 생각이긴 하지만, 만약 사용자 수에 따라 비용이 지수적으로 늘어난다고 하였을 때, 동일한 상품을 제공하는 플랫폼이 몇 개라면, 각 업체의 수익 대비 전체 사용자에게 효용이 제일 많이 올라가는지가 궁금해진다. 뭐, 간단히 말하면, 넷플릭스가 전 세계 (정확히는 유럽/북미/아시아 일부)를 커버레지하고 있다만, 이를 적당히 쪼개서 나눴을 경우 몇 개로 나눠야지 최적값이 나오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유럽에 A라는 서비스가, 북미에 B라는 서비스가, 아시아에 C라는 플랫폼이 운영되고, 그것들이 각 시장에서 독점적 위치를 가졌을 경우와 넷플릭스가 유럽/북미/아시아를 다 먹었을 경우, 수익과 유지 비용이 어떻게 나올지에 대한 궁금증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유지비용이 A+B+C > 넷플릭스 라고 생각하리라고 보지만, 오히려 판권이나 언어/문화적 부분이나, 데이터센터 위치 등의 이유로 A/B/C로 쪼개져 있을 대가 더 효율적일 가능성도 있다.

대표적으로, 배달의 민족과 같은 배달 앱이 그런데, 왜 굳이 배달의 민족을 서울과 부산에서 각각 쓸 때를 가정하면, 그냥 서울에 배달의 서울, 그리고 부산에 배달의 부산이라는 서비스가 각각 있고 운영주체가 달라도 되지 않느냐 이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전국의 이용자를 다 받을 필요 없이 서울 내의 이용자만 커버를 치는 수준으로 시스템을 설계를 했을 경우가 더 낫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드는 것인데, 2000만명이 점심/저녁 시간에 동시에 주문 때리는 앱 vs 1~2만명이 그러는 앱 (역시 이렇게 된다면 구 단위로 앱이 나뉘어질 가능성이 크지만) 하면 후자가 무조건적으로 운영이 더 쉬울 것이다.

이 경우, 얼마나 잘게 쪼개야하는가, 그리고 그렇게 쪼갰을 경우 R&D나 플랫폼의 협상력으로 우위를 갖던 시스템이 무너지지 않는가에 대한 질문을 할 수 있다. 넷플릭스처럼 자체 컨텐츠를 하나 만드는 게 전 세계의 수 백 만 유저 단위의 결제를 유도한다면, 앞의 가정은 진짜 무의미한 것일 것이다. 세계적인 독점이나 과점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이 플랫폼 사업자의 숙명인 것이라는 결론만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런 시스템은 어느 순간 무너지게 되어있다. 사용자는 계속 플랫폼 사용자에게 신규 컨텐츠를 공급하라고 할 것이고, 이에 따라서 (에어비엔비는 좀 예외지만) 새로운 제품을 꾸준히 찾아내거나 런칭을 해야한다. 그렇게 되는 순간, 처음에는 카탈로그에 4~500개 정도 있었던 것이 3~4000개가 되고, 3~4000개였던게 수 만개로 늘어나는 건 순식간이다. 그것이 온전한 형태로 다 관리가 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 나오는 것이다.

플랫폼 사업자는 독점적인 시장 장악을 목표로하고, 팽창을 하고, 그리고 더 이상 팽창을 하지 못하게 되면 기존 유저들을 계속 유지 시키기 위해서 수수료 모델이나 구독형 모델을 어느순간 버리거나 변형시켜, 자체적인 상품을 개발하는 형태로 나아가는 쪽이 결말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넷플릭스도 매달 판권 정리를 하고 있고, 국가별로 다른 영상 수요를 맞추기 위해 각 국가별로 (사람들 눈에는 직접적으로 안 보이지만) 다른 판권 풀을 갖고 있다.

넷플릭스가 기존 시장을 개혁하는 이유는, 개혁을 통해서 자사가 이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체 영상 제작조차도, Whole Sale을 위한 판권 시스템을 우회하려는 방법일 뿐이고, 실제로 기존 배급 시스템을 좋은 쪽으로 변화시킨다고 할 수 없다. 이러한 시도들이 가성비가 안 나오거나 수익성이 떨어진다고 예상되면, 칼 같이 손을 뗄 것이고, 파일럿 프로젝트라고 불리우는 형태로 많은 미드/영드들이 1화나 한 시즌만 출시하고 끝나지 않았는가.

결국 IT화는 무엇을 가져오는가? 그냥, 기존 시장의 전세계적인 파괴만 가져오는 게 아닐까? 뭐 중간에 변하는 건 있지만, 그건 IT가 자비로워서 그런게 아니다. 그냥 그렇게 해야지 살아남기 때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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