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슬리의 소설 『멋진 신세계』에서는 사회는 발달되어 있다. 사람들은 일 입방센치미터짜리 소마 하나로 극한의 쾌락을 얻으며, 모든 사람들은 철저하게 계급화되어 자신이 어떤식으로 차별받는지조차 모르는 -그렇기 때문에 행복한- 사회에 살고 있다. 모든 것들은 컨베이어 밸트에서 시작한다. 심지어 인간조차 수정란들을 영양액이 담긴 컨베이어 밸트 위에 착상 시키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 컨베이어 밸트를 따라 수정란은 배아가 되고, 배아는 태아가 되고, 태아는 아이가 되며, 결과적으로 신세계의 멋진 부품이 되어버린다. 이 소설을 읽은지 한 5년 이상되었지만 나는 이 글귀들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그에 연관된 경험들과 논의들과 이야기들은 아직도 머리에서 맴돌고 있다.
나에게 영향을 끼친 책은 여태까지 존재를 하지 않았다고 믿어왔지만, 요 근래 다시 책들을 읽기 시작하면서 과거의 나를 현재로 이끌어왔던 책들을 한 두 권 씩 찾아내기 시작했다. 뭐 예전에도 말을 자주했지만 청소년회관에서 우연히 읽게 된 『국제정치의 이해』라던지, 요즘 다시 읽고 있는 『보이지 않는 엔진』이라던지, 아님 아직도 경영이나 자기 계발 도서에 굴러다니고 있는 『전쟁의 기술』이라던지... 그리고 기억도 안나는 무수히 많은 책들을 난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기억이라는 것은 무서운 것이다. 때로는 잊고 싶어도 잊혀지지 않으며, 기억하고 싶어도 기억이 안나는 것들이 매번 있다. 하지만, 기억이 안나건 기억 하기 싫건, 어떤 일이나 맥락에 의해서 그 기억이 다시 돌아오는 경우는 많다. 일종의 재귀 호출처럼 같은 상황 속을 그 때와 똑같이 거닐게 되면서 나는 과거와 다시 만나게 된다.
그러나, 이런 맥락적인 상황에서 반영구적인 -실제로는 인간 수명과 같은- 정보 저장 능력을 갖고 있는 우리 뇌와 같은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이 만든 제일 큰 서고라고 할 수 있는 인터넷과 그 부산물들은 정보의 영원성을 보장하지 못한다. 서버가 꺼지거나, 도메인이 바뀌거나, 하드디스크가 날라간다면 그 정보는 존재하지도 않았으며, 존재할 수도 없는 무언가가 되 버린다. 또한 이런 정보들은 기존의 사회에서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정도의 양이 아니며, 인간이 모든 시간을 이 정보를 보고, 듣고, 읽는데 소비한다고 해도 정보가 생성되는 속도가 그것을 소비하는 속도보다 빠르기에 결과적으로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걸 볼 수 있지 않다.
『유튜브 이야기』를 읽었을 때, 창업자 스티브 첸이 유튜브 일일 동영상 업로드량이 24시간을 넘었을 때 정말 기뻐했다는 구절을 보고, 나는 꽤 많은 생각을 했다. 하루는 24시간인데, 유튜브에 하룻동안 올라가는 영상은 24시간 분량 이상이라니! 이는 기업을 운영하는 입장이나 자신이 만든 서비스가 굴러가는 걸 보는 입장에서는 분명히 기쁜일이다. 자신이 만든게 어찌어찌 돌아가서 남들이 쓴다는 것은 쉬이 잊혀질 수 있는 느낌이 이니라는 건 누구나 알 것이다. 내가 만든 무언가를 남들이 쓰기 시작한다는 느낌말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우리는 정보를 만들어냄으로서 우리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꼴이 되는 것 같다. SNS에서 초당 생성되는 글들의 숫자를 보거나, 아님 유튜브에 1분당 올라오는 영상 길이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필연적으로 모두 알 수 없도록 만들어진 사회에서 살고 있다.
헉슬리는 조지 오웰과 달리 정보의 과잉으로 대중이 필요한 정보를 못 받아들이는 상황에 대해서 걱정을 했다. 1984는 페이스북 혁명과 우산 혁명으로 쉽게 오지 못할 것이라는 걸 확인시켜주었지만, 영-미 정보국에서 USIM 데이터를 해킹하여 도청을 시도하거나, 레노버 노트북에 스파이웨어가 심어진 채 출하되어 데이터가 가로채진다는 걸 보면서 헉슬리의 생각이 옳았음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우리는 너무나도 많은 정보 속에서 살고 있고, 이 때문에 우리는 제대로 된 기억조차 못한다. 누구에게는 중요할 텍스트 파일이 하나 없어지는 것은 흔한 일이고, 이걸 깨닫기까지는 엄청나게 많이 쏟아져 내리는 텍스트 사이를 뒤집고 뒤집어야할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우리는 많은 걸 잃어버린다..
1999년, 3D 게임의 혁명을 불러왔던 <홈월드>가 탄생하였고 수 많은 팬들을 만들었다. <홈월드2>와 <홈월드:카타클리즘>이 그 여파로 나왔고, 나름 빈약한 스토리이지만 나름 잘 만들어진 녀석으로 칭송받으며 멀티플레이를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오랜 기간 끝에 <홈월드 : 리마스터드 에디션>이란 이름으로 이 역사를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이에 따라 많은 홈월드 팬들이 다시 모이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 전설이라 불리웠던 사람들이나, 맨날 멀티플레이를 즐기던 사람들이나, 아님 홈월드 카페 죽돌이들, 모더들, 설정 덕후들.... 홈월드를 통해 만났던 사람들이 다시 네이버 카페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당시에 돌아다녔던 공략들이나 글들은 대부분 유실되고 말았다. 네이버 블로그 같은 서비스라면 그나마 괜찮지만, mncast라던지, 몇몇 자료 백업 서비스 같은 곳에 올라간 자료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 멀티플레이 방송 영상이라던지, 토너먼트 경기 영상이라던지는 카페 게시글의 텅 빈 mncast 플레이어의 흔적으로만 존재한다. 다행히도 누군가의 하드에 고이 잠들어있다면야 복구는 할 수 있겠지만, 사실 그 하드를 찾는 데 까지 또 엄청난 시간이 걸릴 건 분명하다.
그 동안 홈월드에 관련된 이야기들은 쌓이고 쌓였지만, 과거에 그 소중한 추억들을 일깨울 것들은 대부분 어디론가 사라진 후이다. 영광스런 과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래, 그것에 익숙해져야한다는 것도 사실이고. 이게 인터넷의 속성인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정말 우린 이런 상황을 지속적으로 유지를 해야하는가? 분명히 사소한 것들을 변화시키기 시작하면 언젠가는 이런 문제도 해결되지 않을까? 란 생각을 자주하게 된다. 난 기억하고 있다 그 때를. 그러나 누구도 기억을 못 할 떄가 오겠지 뭐. 오, 멋진 신세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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