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끄적끄적

스타트업에서 몰입하게 만든다는 것

사실 많은 -많다고 해봤지만 정확히는 열 몇 명 정도의 대표라는 직위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봐왔을 때, 인센티브의 개념과 자신이 어떤 위치에 놓여있는지에 대한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를 자주 봐왔었다. 특히, 오랫동안 비즈니스를 해왔던 사람 (정확히는 그 때까지 살아남은 사람)과 갓 스타트업이나 회사를 꾸려가는 사람들의 시점과 관점 차이는 상당히 명백해 보인다는 느낌이 강하다. 후자의 사람들을 볼 때마다 자아 도취적이며, 그 억누를 수 없는 고양감은 결과적으로 회사가 운영되는데 있어서 큰 잘못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듯하는 것 같다.


뭐, 각설하고. 개인적으로 "대표"라고 부르는 사람이 하나 있다. 뭐 예전 (이라고 하지만 아직도 적이 있기는 한) 스타트업의 공동 대표였던 그는 "왜 주변인들이 일에 몰입을 하지 못하는가"라는 이야기를 계속 나에게 하였다. "왜 그 사람들은 왜 이렇게 중요한 일에 대해서 관심을 갖지 못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 사람들은 왜 이렇게 위대한 일을 기쁜 마음으로 하지 못하는 것인가", 아니면 딴 공동 대표가 말한 무급으로 일하는 상황을 타개 해야한다는 이야기를 하나도 이해를 못한다던가. 이런 것들의 연속이다.


사실, 이러한 문제는 자신이 을의 입장이나, 혹은 자신이 타인이 왜 이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궁금함을 하나도 가져보지 못했다는 걸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혹은, 자신이 만들고 있는 제품에 콩깍지가 씌여서 이 제품이 정말로 일획천금의 기회를 줄 수 있는 제품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들도 종종 본 적이 있다. 뭐 어쨌든, 공동 창업자건, 같이 일을 하는 사람이건, 직원이건 모든 사람들은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이러한 인센티브는 단일할 형태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무급으로 사람을 일하게 하면서, 이 제품이 성공하면 우리 모두 지분대로 돈을 엄청 벌 꺼야라는 말을 매번 -그것도 투자 실패할 때마다- 하는 대표라는 작자를 보면서, 아니면 제품 프로토타입도 제대로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제품이 성공한 마냥 구는 행동을 보면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의지가 깍여나간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아니면, 지금 타인의 귀한 시간을 투자하면서, 커리어와 월급과 거기다 현재라는 소중한 자산을 투입해 나가면서 자신의 꿈을 이루어주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도 못하는 경우도 많이 봤다.


뭐 같이 일 했으니 자신의 꿈이기도 하지만 같이 일하기도 한 사람의 꿈이라는 말이라는 대꾸를 할 수도 있곘다.


대부분의 직원, 혹은 같이 일하는 동업 관계의 사람들은 3개월에서 6개월 정도면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으며, 이 제품이 어느정도 성공할 수 있으며, 어디쯤에서 발을 빼야할지에 대한 감이 잡히는 경우가 많다. 아무 생각 없이 친한 친구가 요청해서 같이 일하기로 했다던가, 아니면 초반에는 급격하게 성장하고 홈페이지도 만들어지고 뭐가 나올 거 같으니까 기쁜 마음으로 열심히 일하다가 슬럼프 기간에 들어서면서 점점 열정을 잃어가던가, 아니면 6개월 동안 통장이 텅장이 되가면서 가족들의 회유와 번듯한 직장 잘 다니는 친구들을 보면서 점점 회의감이 든다던가, 기술력 부재로 인해 지속적으로 과도한 잡무와 자동화안 된 단순 업무를 반복하게 되는 경우들을 계속 겪다보면 사람은 변하게 되어있다. 처음에는 같은 꿈을 꾸었을지는 몰라도, 지금은 현실을 직시하고 다른 더 안전한 미래를 원하는 경우도 많다. 일획천금을 바라고 들어온 것이 아니라 적당히 나의 인생을 한 번 걸어볼 만한 작은 도박 (혹은 일탈) 정도로 생각하고 들어온 경우가 대부분이며, 일반 회사보다 이렇게 사정이 열악할 줄 모르고 들어온 친구들도 많다.


관계를 유지 시키는 것은 대부분 화초를 키우는 것과 비슷하다는 느낌이다. 외부의 요소들을 신경 써야할 때가 많지만, 그렇다고 집 안에 있는 화초들에게 물을 제 때 안 주거나, 볕을 제대로 안 쪼여주거나, 혹은 영양분을 충분히 공급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부터 시들시들해지다가, 결국 죽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뭐 이럴 때, 깊은 반성을 하면서 새로운 (잠시만 뭐?) 화초를 하나 사서 다시 키우면 그나마 괜찮지만, '까탈스러운 화초를 사서 그래, 선인장 같이 굳센 걸로 사야했을 껄'이라는 후회를 하고, 가게에 가서 "오래 버티는 걸로 주세요."라는 말을 하는 경우를 더 많이 본 것 같다.


사람들이 일에 몰입하게 하고, 공통된 목표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계속 자신이 갖고 있는 목표와 타인이 갖고 있는 목표들을 타협해 나가는 것과, 타인이 갖고 있는 생각들을 고려해서 회사를 운영하는 수 밖에 없다. 그러다 정 안 맞으면 새로운 팀원을 구하는 것이겠지만, 사실 이런식으로 팀원을 갈아치우게 된다면, 계속 팀원이 바뀌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제일 편한 방법은 역시나 돈이라는 강력한 인센티브이다. 자기가 싫은 일이어도 충분히 돈만 받으면 어느 정도 (자기 한계 이상으로는 안 하지만) 아웃풋을 내 줄 것이며, 관리하는 입장에서도 별로 WBS나 일정관리만 제대로 한다면 제대로 된 산출물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적은 돈을 주고 사람을 일하게 하는 것과 무급으로 일하게 하는 것은 정말 큰 차이를 보이는데, 후자는 나는 너를 위해 봉사를 한다는 느낌이 강할 뿐더러, 특히 위계나 명령보다는 수평적인 관계나 설득에 가까운 형태로 사람을 다뤄야한다. 뭐, 돈을 준다고 해서 위계질서 세우고 그런 건 전혀 안되지만, 돈이 없다면 해야만 할 것을 시키는 것조차도 불가능 할 수 있다는 것을 계속 명심해야한다. 돈 주고 어느 정도 퀄리티 나오는 홈페이지를 좀 무리해서 만들어주세요는 씨발씨발 거리면서라도 만들게하는데, 돈도 안 주고 프론트+백엔드 제대로 되고, IE부터 크롬, 모바일 각종 해상도 다 맞춰서 1달 내로 해주세요. 이딴 소리를 한 2~3번 들으면 그냥 때려쳐 소리가 나오는 건 당연할 걸지도 모른다. 비유가 너무 심했나...? 뭐 근데, 다 겪은 일이라서... 하하...


아니면, 돈이 없으면 지분을 줘야한다. 하지만, 지분보다는 좀 더 명확한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지분이 종이쪼가리로 변할 확률은 거의 95% 이상이고,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주식 HTS 키면 나오는 동전주보다 가격이 쌀 확률은 나머지 5%의 98% 정도 될 것이다. 음 그러니까 대충 0.02% 정도가 제대로 된 보상을 받을 확률이라는 것으로 생각하면 편하다. 대부분 이런 상황에서 꺼내들 수 있는 카드는 투자와 배당이다. 투자를 억 단위로 받고, 월급을 제대로 3개월이나 6개월 이내 받을 수 있다는 보장을 하던지 (특히 VC나 투자처와의 상황을 문서화하거나 칸반보드에 정확히 써두는 것이 싸움 덜 생기게 하는 방법이다) 투자 진행 상황을 명백히 알려야한다는 것이다. 아니면, 국책 사업이나 각종 국가 기관 끼고 하는 투자들을 노려서, 상금이나 지원비를 받고 (현금화 할 수 있는) 노트북이라도 3~400만원짜리 하나씩 쥐워주는 것이 사기를 다시 높이는데 더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맥북 프로 풀옵션이나 각종 모니터 등등 장비들 갈아치워주는 것도 뭔가 희망고문스러우면서도 계속 일하는 동기를 만들어준다)


마지막으로, 안정적인 생활이다. 9 to 6나 10 to 5를 무조건적으로 지켜야하고, 식대 같은 건 지원을 기본적으로 해주고, 될 수 있으면 교통 비용까지 지원하고, 주말이 있고 저녁이 있는 안정적인 삶을 보장시켜야한다. 사람 없어서 죽을 거 같은 스타트업에서 그런 사치를 부릴 수 있느냐라는 질문을 할 수 있는데, 보통 일이 없을 시즌이 분명히 있고, 투자 때문에 붕 뜬 시기가 분명히 있을 경우가 많다. 이럴 때, 꼭 대표 욕심으로 열심히 일하는 우리, 몰입해서 일하는 우리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사람 노는 걸 못 보고 쪼고 있어도, 또 그렇게 사람이 이탈해나가는 경우를 많이 봤다. 급할 때에는 양해를 구하고 급하게 운영해야곘지만, 쉬어야할 때에는 분명히 쉴 수 있어야한다. 사람은 24시간 돌아가는 기계가 아니며, 심지어 기계도 1~2시간씩 점검 받으면서 쉰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투 잡을 하건 쓰리잡을 하건 냅두는 것도 도움이 된다. 사실 돈이 없으면 외주를 하게 되는 경우들이 종종 있는데, 보통 주말이나 업무 끝난 상황에서 일을 하는 경우들이 많은 편이다. 앞서 말한 제대로 된 시간 보장 이런 것들을 충분히 지킨다면 이런 문제들은 발생하지 않겠지만, 그리고 월급 제대로 주기 시작하면 외주를 그만둘 확률이 큰 편이지만, 어느 순간 외주 하던게 본업이 되고 본업이 외주가 되는 경우들이 종종 있는 편이다. 하지만, 이 사람이 돈을 안 받고 계속 일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이런 행동을 막는 행위 자체가 바로 회사에서 이탈하게 되는 주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솔직히, 애정을 갖고 있으니 회사를 바로 안 때려치고 외주해서 밥 값부터 교통비까지 다 자기가 내면서 회사 일을 무상으로 하는 것인데, 감사를 하면 감사를 해줘야했지, 이것에 대해 짜증을 내면 안된다.


어쨌든 장기 마라톤을 달릴려면, 사실 몰입이라기보다는 체력 분배와 천천히 꾸준하게 달리는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투자가 1년 365일 있는 것도 아니고, 특정 시즌에 피크를 찍고, 1개월 간격으로 주기적으로 열리는 각종 투자 행사들을 생각하면 더더욱 이런 안배와 제품 개발 일정 조절을 제대로 해야할 중요성은 더더욱 커진다. 사실 마라톤도 엄청난 몰입 아닌가. 42.125 km를 쉬지 않고 뛰면서, 자신의 근육부터 수분까지 각종 상태들을 계속 체킹하면서 하나의 목표를 향해 꾸준히 달린다는 거 자체가 아주 힘든 싸움이라는 걸 잊어서는 안된다. 처음에 남들보다 좀 늦춰졌다고 속도를 내거나, 중간에 스퍼트를 하거나, 점점 뒤쳐지는 걸 인지하지 못하거나 이런 행위 모든 것이 몰입을 하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