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하루하루

2014.10.05 커짐 그리고 작아짐

1. 대학 수업들을 골라 듣고 있는데, 경영 쪽이나 회계 쪽으로 듣고 있다. 경영 이중전공을 준비하는 입장이고, 그 쪽 관련 자격증을 따는게 목적이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듣는 상황이다. 근데 이런 수업들을 들을 때마다 매번 느끼는 건 경영에서 IT를 이해하는 것과 IT에서 경영을 이해하는 것 둘 다 엄청난 모순점이 있다는 것을 자주 느낀다. 경영에서는 IT가 무슨 화수분이나 도깨비 방망이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있거나, 아님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일들을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경우들을 많이 봤다. 반면 IT에서는 경영을 약팔이로 보거나 아님 IT 보다 하등한(?) 학문으로 보는 듯한 느낌이 강하다. 하도 인문학도들에게 당한 전례가 많기 때문이 아닐까한다.


2. 사실 이 이야기를 쓰게 된 것은 요즘 듣는 수업마다 깔거리가 한 두개가 아닌 것과 그리고 수업에서 배우는 것 대비 시간 낭비가 점점 많아진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기술 경영이나 아님 소비자 심리나 아님 관리 회계나 솔직히 듣는 입장에서는 진짜 뭐랄까 자괴감만 드는 수업의 연속이다. 사실 내가 이 분야에 대해 자신이 있다고는 말은 못하지만, 일단 내가 스타트업 준비하겠다고 -사실은 잡스나 빌 게이츠에 대한 열망을 품고 IT기업의 흥망성쇠를 열심히 찾아본 결과- 책을 읽었던 것들이나 아님 IT에 관련된 경영 사례들이나, IBM의 몰락, 인텔의 부흥, 애플 컴퓨터의 황금기, 마이크로소프트와 넷스케이프의 전쟁 그리고 반독점법 등등... 뭐 이런저런 사례들은 다시 경영대 쪽 수업을 들으면서 다시 배우는 전혀 신선하지 못한 내용들이고, 그리고 내가 가르치는 사람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는 근자감을 키우게 된 원인인거 같다.


3. 교수들의 실력차이는 사실 말하는 것만 봐도 대부분 안다. 슬라이드를 아예 읽거나, 자기가 쓴 책을 사라고 하거나 -예외는 있다-, 아님 필드 경험이 아예 없거나, 최종학력이 박사인데 학위 관련 기관 근무 경험은 없거나 이런 사람들에게 배우는 건 솔직히 교과서에 적힌 이상론뿐이다. 누구나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를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창조적 파괴를 일으켜본 사람과 그걸 지켜본 사람은 분명히 말 하는 것이 다르다. 이런 것들은 필드 경험자와 그렇지 아니한 사람에게 아주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계획을 잡고, 시장조사를 하고, 설계를 하고,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피드백을 받고, 제품을 시장에 내놓고, 그리고 마케팅을 하면서 제품 라이프 사이클을 몸소 겪은 사람과 책에서 4~5단계로 나눠진 제품 라이플 사이클을 외운 사람은 분명히 말하는 방식이 다르다.


4. 사실 나는 사람들이 위축되는 이유를 잘 몰랐다. 충분히 능력이 있다면 자신감을 갖고 살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내가 위축이라는 것을 직접 겪어본 이후로는 그런말을 잘 못하겠다. 어렸을 때에는 별로 위축이라는 걸 겪어보지 못했는데, 그걸 고등학교 - 재수 - 대학교라는 순서를 겪으면서 정말 많이 겪었다. 내가 정말 이 분야에서 No.1은 아니더라도 다들 알아주는 실력 아닌가라고 생각을 했으나 그게 아니였고, 1%는 아닐까했더니 그것도 아니였고 10% 정도일까했더니 음... 그래 그럴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에는 난 이미 너무 많이 뒤쳐진 상황이었다. 이런 환경에 놓여서 내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일지는 모르지만, 과거의 자존심이나 오기 같은건 별로 없다는 걸 보면 그런거 같지도 않다. 4시간씩 자면서 열 몇 시간씩 공부만 하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도 배웠다.


5. 언제나 다시 되돌아볼 때마다, 내 강점은 한 필드나 한 학문에서 강세를 보이는게 아니라 전반적으로 이런 저런 곳을 들쑤시고 다녔고 그것 덕분에 필요에 따라 이런 저런 스킬들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것, 한 분야에서 총력전을 벌일 필요 없이 다른 분야에서 끌어다 쓰거나 정 안되면 아웃소싱을 하면 된다는 것들을 자주 깨닫는다. 그렇기에 최대한 넓은 영역을 공부하고 배우려고 노력 중이다. 그리고, 그 영역을 넓혀갈수록 내가 작다는 것과 크다는 것을 같이 배운다.


6. 남들보다 모든 걸 잘 할 수는 없다. 그게 학문이 단계적으로 분화한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여러 학문을 아우르는 것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그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는 건 외골수들이 아닌 문어발식 확장을 한 사람들인것 같다는 생각이든다. 대부분의 학문은 단일 '객'체로써 존재를 못한다는 것도 이런저런 것들을 공부하면서 배웠다. 경제학사를 배우면서, 통계나 수학적 수치 계산이 도입되고 기존 이론들이 무너져 내리는 것과, 경영에서 회계가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서 배울 때, 심리학이 마케팅에 쓰인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목도할 때, 물리학에서 수학이 가지는 의미 뭐 이런것들을 보면서 느낀게 많다.


7. 퀀트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고딩 때 감명깊게 읽은 책 이름이기도 한데, 사실 거기서 생각나는 건 콘돔 2개로 2대 2 섹스를 어찌하는가(...)와 블랙숄즈 곡선, 그리고 vi 에디터에 대한 짧막한 언급이다. 여튼, 박사학위 논문을 내지 못한 박사 학위 (?) 받은 사람들이 어찌 금융가로 갔는지, 금융 모델들을 배우고 그걸 실전에 적용시키는지를 보면서 그 당시에는 많은 생각을 한 거 같다. 그리고, 지금도 퀀트들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기도하고.


8. 사실 인생을 살면서, 너는 왜 그렇게 사냐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아니 질문이라기보다는 힐난이나 비난에 가까운 거겠지만, "왜 너는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시리즈는 내 학창시절 내내 따라다녔던 접미어 수준의 이야기고, 뭐 그렇기 때문에 왜 이렇게 사는지 모르겠는 내가 있는게 아닌가. 경영대 수업 가서 너 분명히 C+맞는다는 걸 완곡히 돌려 말하는 "넌 왜 이 수업 듣니?"를 듣기도 하고, 교수랑 무쌍을 찍기도하는 뭐 그런 인생은 분명히 나쁘진 않다.


9. 장벽을 넘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다. 기술 경영 관련 교양과목에서 화공학과 출신 교수가 자기가 뭘 개발하고 경영하는지에 대허서 아주 날카롭게 가르치기도 하며, 내 주변에서 수학과/물리학과 출신인 사람이 금융 공학을 배우고 제1금융권으로 들어간 사례도 간간히 들린다. 아님 배달의 민족처럼, 디자이너 출신 CEO가 테크 기업을 이끄는 경우도 있다. 다시 융합의 시대가 돌아온 것 같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복잡한 세상이기에 경영도 IT도 모든 것들이 복잡해진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가 의외로 작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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