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끄적끄적

난 내가 중학생 때 쓰던 글들을 보면 상당히 부끄럽다. 어떻게 저런식으로 생각을 하고 글을 썼지? 어떻게 저런식으로 글을 전개할 생각을 했지? 라는 의문들이 머리를 둥둥 떠다닐 때가 많다. 그 당시 논술을 배우면서 매번 들었던 소리도 "이 정도면 괜찮지만, 그 이상으로 써라"였다. 심지어 나는 조선일보 스타일에 심취해 있어서 쓰잘데기 없는 한자어를 남발했고, 글 구조도 조선일보 사설 형식을 담습했었다. 글을 쓰고 있을 때에는 그것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는 정말 몰랐었다. 고등학생이 되고나서, 내가 글 쓰는 방법을 바꾸고 나서 그것이 얼마나 한심하게 쓰여진 글들인지를 알게되었다. 조선일보 사설은 분명히 호소력은 있었지만, 논리적이지는 않은, 그리고 목적을 위해 글을 왜곡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었기에 글을 배우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큰 독이었던것 같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에는 하룻강아지가 범을 안 무서워하듯이 내 글에 자부심이 상당히 컸었던걸로 기억한다. 계속 글 쓰는 방법을 벤치마킹하면서 바꿔나가고 그 글을 쓰기 위해 지식을 쌓으면서, 글쓰는 스킬이 하나 둘씩 쌓여갔다. 어느순간 "나 정도면 글을 잘 쓰는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갖고, 글의 어조가 단호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얕은 지식과 짧은 식견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분명히 한계가 있었고, 언젠가는 그 한계에 부딛히기 마련이다. 고3 때에는 그렇게 글을 많이 쓰지 못했었으니 한계 같은 건 느끼지도 못했지만, 재수학원을 다니던 그 시절 입사제에 자기소개서를 쓰기 위해 이주간 3000자 이상의 글을 썼을 때 한계라는 걸 느꼈다.


자신의 입학 동기는 무엇인가, 입학을 하기 위해 준비한 것은 무엇인가, 학교 생활을 하면서 느낀것은 무엇인가, 자신이 겪었던 역경은 무엇이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무엇인가 그리고 자신이 읽었던 책을 비판하라. 이것들을 하나하나 채워나가면서, 각각의 글들이 의미를 지니고, 이 글들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가 되도록 글을 쓰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다. 대학이 나를 왜 뽑아야하는지, 대학에서 내가 뭘 할 것인지에 대해서 설명하고, 대학에서 요구하는 것들을 충족시켜야한다. 특히, 어떤 책들을 읽었는가 이 부분이 입학 당락에서 큰 역활을 한다고 한다. 여하튼, 난 "창업을 하고 싶습니다" 라는 서두를 뽑아 내가 이 대학에서 무엇을 배우고 싶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기술하고, 좀 많이 얼토당토 않은 계획을 적어놨다. 개인적으로 창업이라하면 어느정도의 역경을 이겨내고, 사업 대박을 쳐서 네이버나 구글이나 페이스이나 이런 대기업이 되는 걸 목표로 하는 거라고 생각을 해왔었다. 그리고, 그러한 나만의 사전적 정의에 따라 블라블라블라 난 IDC를 세우고, 기업 확장을 하고, 블라블라블라, 세상을 바꾸겠습니다! 라는 글을 써버리고 말았다. 그 당시 아마존의 AWS 열풍도 있었고, 웹 서비스를 하는 IT기업의 초석은 IDC를 세워서 데이터 관리를 하는 거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패기 넘치는 글을 쓸 수 있었다.


하루나 이틀에 한 단락씩 글을 써 내려가, 결국 자소서는 어찌어찌 완성됬다. 그리고, 10번 정도 되는 퇴고 끝에 자소서는 상당히 호소력이 있는 글로 완성이 될 수 있었다. 자뻑과 내 인생의 실패기와 나름 큰 포부를 쓴 글들은 나름 내 인생을 잘 표현했고, 나름  기승전결도 있었다. 하지만, 그 글을 읽었을 때 붕 떠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분명히 읽으면 읽을수록 글에 빨려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그 느낌 뒤에는 뭔가 탁상공론 혹은 구름 위에 떠 있는 의자 같은 느낌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난 이런 붕 떠 있는 글을 싫어한다. 그리고, 붕 떠있는 글은 어디선가 아주 큰 결함이 있다는 걸 의미한다. 논리가 부족하거나, 결합이 느슨하거나, 아님 애시당초 될 이야기가 아니거나. 시간은 없었고, 글을 처음부터 쓸 여유는 없었다. 하지만, 나름 최선을 다해 쓴 글이자, 붕 떠있다는 것만 빼고는 내가 정말 잘 쓴 글 중 하나였다. 별 생각없이 난 내 글을 제출했다.


난 수능을 봤고, 수능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불합격 통지를 받았다. 아니, 면접을 볼 기회를 받지 못했다. 그렇게 내 생애에서 가장 긴 시간을 들여 쓴 글은 산화했다. 내가 애지중지하는 USB 메모리에 semi final과 final과 final (2) 라는 이름으로 저장은 되 있지만, 글로써의 가치는 아예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했다. 난 다시 USB에 저장된 자소서를 볼 엄두가 안난다. 언젠가는 다시 읽을 날이 오겠지만, 아직까지는 아닌거 같다.


난 글을 잘 쓰지 못한다. 남들에게 글을 잘 쓰지 못한다는 소리는 듣기는 싫지만, 나는 글을 더 잘 쓰기 위해 더 노력해야한다는 것은 안다. 더 배워야한다는 것. 고등학생 때부터 깨달은거지만 계속 상기 시켜야할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