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영화 : 아포칼립토
평론가처럼 글쓰기,그동안 정말 어렵게 느껴지셨죠?
오늘 시간은 이송희일이라는 똑똑하신 분의 글쓰기를 통해
유식한 사람들의 글쓰기에 대해 배워보겠어요.
이 글은 어쭙잖은 지식으로 어쭙잖은 생각을 어떻게 현란하고 설득력 있게 포장하는가를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여러분 준비되셨나요?
이송희일의 견문발검 (2007-01-24)
너무나 극명하게 제국주의 영화, 아포칼립토
전쟁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지난 해 7월 28일, 멜 깁슨은 난폭운전과 음주 혐의로 체포되었다. 유대인 거주자들이 많이 살고 있는 거리를 지나던 중이었다. 체포 과정에서 술에 취한 멜 깁슨은 그 지역 경찰관에게 혀 꼬부라진 소리로 이렇게 물었다.
"세계의 모든 전쟁의 책임이 유대인에게 있으며 당신은 유대인입니까?"
이 발언 때문에 멜 깁슨은 일파만파 퍼져나간 비판으로 혹독하게 곤욕을 치러야 했다. 지난 번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때도 ‘홀로코스트는 꾸며낸 이야기’라고 주장해서 반유대주의자로 몰렸던 그의 인종주의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른 셈이다. 사실 모든 매체와 영화 속에서 지겹게 반복되는 ‘홀로코스트’의 이미지들이 과잉으로 범람되었고, 그것이 곧 지금의 유대 권력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그가 갖고 있는 특정한 종교적 세계관 때문에 유대인을 철저히 악마화하고 있는 그의 의견은 속이 뻔히 보이는 데다, 모든 전쟁을 유대인 책임으로 돌리는 그의 기만적 세계관에 대해서는 자못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을 듯하다.
어떻나요? 시작부터 압도적이지 않나요? 필자는 먼저 멜깁슨은 인종차별적인 인간이라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예를 들면서 글을 시작하네요. 이런 도입은 읽는 사람의 흥미를 돋워주는 동시에 글의 방향을 제시하는 성격을 들지요.
이 도입부는 멜깁슨이 양아치 인종차별주의자라는 것을 독자에게 주입하는 역할을 합니다. 눈치 빠르신 분들, 그런데 반유대주의=백인우월주의 가 같지는 않다고요?
정확한 지적입니다. 이 영화는 유태인도 안나오고 백인도 거의 안나오죠. 하지만 상관없습니다. 필자는 어차피 멜깁슨 = 인종차별주의자 =이 새끼가 만드는 것은 무조건 인종차별영화 라는 공식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니까요.
이런 오류를 아마 발생학적 오류리고 하지요? 하지만 필자는 무식한 독자들이 이런 것을 알리가 없지~라고 생각하며 재빨리 다음 부분으로 넘어갑니다.
멜 깁슨은 정말 멍청하거나 신심이 깊은 모양이다. 세상에, 지금 지구촌에서 벌어지는 거개 모든 전쟁의 책임이 미국의 펜타곤에 있으며, 그는 펜타곤이 지켜주고 있는 그 안전한 제국에 거주하며 돈과 명예를 거머쥐고 있는 스타라는 사실을 모르다니. 멍청하게도, 지구촌 곳곳에 지금도 남실대고 있는 ‘No War, No Bush’라는 피켓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가 보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멜깁슨은 멍청하고 우둔하게 미정부를 두둔하는 우익 앞잡이 정도로 치부하고 자신의 우월함을 자랑하는 군요. 하지만 멜깁슨이 반시오니즘(멜 깁슨이 뭘 믿는지는 모르지만, 반시오니즘 계열의 주장은 바로 저 펜타곤과 미국정부를 유대인이 뒤에서 조종하고 흔들고 있다는 주장인데요) 이라면 유대인의 꼭두각시에 불과한 미국정부를 지지할리가 없을 텐데 말이죠
그런데 필자는 멜깁슨이 미국정부를 지지하고 유태인은 증오한다는 식으로 썼네요. 왜 그랬을까요? 일단 유식한 사람은 부시를 한번 까주는 것이 인지상정이고, 멜깁슨을 인종차별주의자에 부시지지자 라고 만들면 사람 하나 쓰레기 만드는 것 우습지 않거든요.
멜 깁슨, 공부 좀 해라
미국 박스오피스 1위에 올라서며 멜 깁슨에게 상업 흥행 감독으로서의 지위와 명예를 안겨준 <아포칼립토>의 국내 개봉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미국에서 영화는 시쳇말로 대박이 났고, 관객들은 영화 속의 잔인한 사지 절단과 고어 영화를 연상케 하는 피범벅 이미지들에 대해 의심의 눈을 던지면서도 열광적으로 환영했다. 한국 관객들도 이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술렁이는 분위기다.
과테말라 원주민 복원 운동가들이 ‘이 영화는 인종차별적이다. 마야 문명을 왜곡하고 있다’라고 항변했지만, 멜 깁슨은 서구 역사학자들이 쓴 책을 들이밀며 ‘공부 좀 하라’는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여기서 과테말라 원주민 복원운동가들이 "마야문명 왜곡"에 대해 항의했다는 것을 잘 기억하세요. 원주민 복원 운동가들은 마야문명을 왜곡했다고 하네요. 인종차별, 제국주의 같은 말은 없어요.
그런데 멜 깁슨의 ‘공부 좀 하라’는 충고는 대단히 역설적이다. 15세기 이후 스페인 함대가 메소 아메리카의 지역을 침탈해서 원주민을 노예화하고, 그들의 언어와 삶을 모조리 불살라버린 통에 수세기 동안의 역사를 통째로 분실한 원주민 후예들에게 서구의 후예가 서구인의 눈으로 쓰여진 역사책을 내밀며 공부를 하라는 충고는 어딘가 핀트가 나가도 한참이나 나가 있지 않은가. 헌데 실상은 조금 더 불쾌하다. <아포칼립토>를 제작하면서 많은 역사학자들에게 감수를 받았다고 자랑하고 있지만, 사실 이 영화는 별다른 역사적인 고증 없이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에 나오는 나쁜 원주민이 좋은 원주민의 심장을 칼로 도려내 제단에 바치는 장면을 그대로 다시 재탕으로, 그것도 길고 지루한 장면들로 우려먹고 있기 때문이다.
이 현란한 글빨을 보세요. 뭐 나무랄데가 없죠. 일단 인종차별, 제국주의 쪽으로 몰기 위해서 스페인 함대 나오기 시작하고 운을 띄우네요. 이런 것이 바로 글짓기의 묘미죠. 뿌리고 거두어들이기. 훌륭합니다.
<아포칼립토>의 내용은 뻔하다. 메소 아메리카의 어느 작은 숲 속에 살고 있는 착한 원주민들. 참으로 착하게도 어우러져 살아간다. 그런데 어느 날 나쁜 원주민들이 마을을 습격해 사람들을 죽이고 건장한 남성들을 인질로 어디론가 끌고 간다. 알고 보니 그곳은 지금에까지 잔인하기로 소문이 나 있는 아즈텍 고대 도시다.
자, 아즈텍의 수도 테노치티틀란의 그 악명 높은 피라미드는 얼마나 무서운 곳인가. 그곳 제단에서 전쟁 포로와 착한 원주민들의 심장을 갈라내고, 칼로 머리를 떼어낸 다음, 그 사체를 발로 밀어 피라미드 계단 아래로 데굴데굴 굴러 떨어지게 하면 아즈텍 시민들이 열화와 같은 환호성으로 응답하는 그 생지옥. 줄지어 희생양이 되는 그 아비규환 속에서 우리의 주인공 ‘표범 발’은 아직 살아있는 아내와 아들을 그리워하며, 사냥꾼들을 피해 필사적으로 정글 속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아포칼립토>의 핵심은 바로 살인귀로 가득한 고대 아즈텍 도시과 피라미드 처형식에 관한 장면들에 놓여져 있다. 실제로 멜 깁슨 감독이 이 장면에 많은 시간들을 할애했고, 살점이 튀고 가슴에서 분리된 심장이 손아귀에서 꿈틀거리는 장면, 그리고 미친 듯이 환호하는 군중 씬은 세공한 흔적이 역력하다. 이 생지옥에서 우리의 주인공 ‘표범 발’은 소녀의 예언처럼 탈출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가 주어진 것뿐이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이 영화 <아포칼립토>에서도 인간 신체의 잔혹한 훼손에 대한 멜 깁슨의 페티시는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이름난 감독이 하면 리얼리즘이고 멜깁슨 따위가 하면 페티시가 되는 거죠. 하여튼 이렇게 여러가지로 요리감에 흠집을 잡아놔야 합니다. 나중에 박살을 내려면 미리미리 금을 만들어 놓는 것도 중요하죠.
하지만 역사학자들로부터 고증을 받았다는 <아포칼립토>를 보고 나면, 멜 깁슨이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미국의 역사학자들이 여전히 공부를 안 하고 있거나, 둘 중 하나가 이 영화의 거짓말에 젖줄을 대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기존의 마야, 아즈텍 문명을 희화화하는 영화들은 칼로 가슴팍을 도려내고 심장을 움켜쥐는 장면에서 모두 끝나지만, <아포칼립토>는 한 걸음 더 나아가긴 한다. 목을 쳐내고 시체를 발로 차서 피라미드 아래로 데굴데굴 굴러가게 하는 장면이 더욱 세심하게 첨가된 것.
그런데 정말 거기에서 끝난 것일까? <아포칼립토>의 맹점은 ‘왜?’라는 의문이 빠져 있다는 점이다. 왜 저들이 저렇게 잔혹한 인신공희 의식을 가지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빠져 있고, 이것은 ‘쟤들은 서구 사회의 침략으로 망해도 쌀 만큼 잔인하고 파렴치한 인종이다’라는 당위의 명제로 자연스럽게 연동되기 마련이다.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왜곡의 기술이 빛을 발하죠. 영화에서 그 끔찍한 포로 처형 후에 왕은 이렇게 외치죠. "태양의 백성들아, 이 시련에 동요하지 말지어다. 태양의 신에게 제사를 바친다!" 한 마디로 역병과 기근으로 혼란스러운 민심을 바로잡기 위한 정략적 대학살이었죠. 이걸 설명하기 위해 멜 깁슨은 역병지역과 기근지역을 미리 보여주고 마지막 왕의 연설로 선명하게 "왜 이런 학살을 했는가?"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필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아포칼립토>의 맹점은 ‘왜?’라는 의문이 빠져 있다는 점이다. 왜 저들이 저렇게 잔혹한 인신공희 의식을 가지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빠져 있고, 이것은 ‘쟤들은 서구 사회의 침략으로 망해도 쌀 만큼 잔인하고 파렴치한 인종이다’라는 당위의 명제로 자연스럽게 연동되기 마련
바로 이것이 왜곡의 미덕입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필요한 부분만 발췌하는 기술, 옛날에 조선일보의 18번, 원천기술, 바로 취사선택왜곡의 기술입니다. 이 기술 앞에서는 그 어떤 배려도 장치도 소용이 없죠. 왜냐하면 처음부터 필요없는 부분은 안보거든요
여기서 만약에 이 왜곡된 부분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멍청한 독자들은 이제 게임 끝났습니다. 필자의 펜 끝에서 놀아나는 거죠. 이런 독자들, 바로 우리들의 밥입니다. 이런 왜곡의 기술은 유식한 글쓰기의 가장 중요한 기술이니까, 반복 학습, 절대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어쩄든 필자는 이제 멜 깁슨의 의도를 ‘쟤들은 서구 사회의 침략으로 망해도 쌀 만큼 잔인하고 파렴치한 인종이다’라는 당위의 명제로 자연스럽게 연동 이라고 자연스럽게 물꼬를 돌렸으니 이제 청산유수, 일사천리, 마지막 마무리만 잘하면 되겠죠?
자, 다시 상세하게 그림을 그려보자. 전쟁 포로들과 생포된 착한 원주민들이 걸어 올라가는 피라미드의 계단 수는 114개다. 그 계단을 다 올라가면 제단이 있는데, 아즈텍 문명의 신인 위칠로포치틀리 신(태양과 전쟁의 신)과 틀랄록(비의 신)에게 바쳐지는 것들이다. 영화에서 보여지듯 칼로 가슴팍을 도려내 심장을 추출하고 그 사체는 피라미드 아래로 데굴데굴 굴려지게 된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보여주지 않지만, 이 의례의 가장 궁극적인 장면은 바로 여기에서부터다. 아래로 굴러 떨어진 시체는 어떻게 되었을까?
문화인류학자 사와군의 주장에 따르면, 피라미드 계단 바로 아래에는 쿠아카퀼틴이라는 노인이 기다리고 있다.
“그곳에는 쿠아카퀼틴이라고 불리는 노인이 있어 시체를 붙잡아 그들의 부족신을 모시는 신전으로 옮겨놓고, 그곳에서 시체의 팔다리를 자르고 먹기 좋도록 가른다.”
그렇다. 시체는 먹기 좋게 잘라지고 사람들의 입 속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아즈텍 고대 문명의 막바지는 식인 왕국 그 자체였다. 침략 초기 스페인 사람들이 아즈텍 도시를 방문했을 때, 가장 놀란 게 도시 중심부의 거대한 두개골 진열장이었다. 대략 두개골의 수가 10만을 넘어섰던 것이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문화인류학자 마빈 해리스에 따르면, 아즈텍 문명의 인신공희 의식은 놀랍게도 ‘단백질의 공급’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한다.
하면 왜 그들은 인육을 먹으면서까지 단백질 공급을 해야 했던 걸까? 지금도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가장 유력한 설은 아즈텍 문명이 생태 파괴와 급작스런 인구 증가로 인해 적정한 생활 환경에 대한 타협점을 이루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인신공양 의식을 통한 인육의 공급, 또 그것을 통한 지배 계급의 결속을 이루려고 했지만 궁극적으로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생태 조건의 파괴와 인구 증가로 문명 자체가 망했다는 것.
‘왜?’가 빠져 있는 멜 깁슨의 <아포칼립토>는 그 인신공양 의식을 잔인하고 추악한 원주민의 문화로 타자화하면서 잔인한 장면들을 세공하는 데만 골몰해 있을 뿐, 한 문명이 왜 이토록 갑작스럽게 망했고, 또 인육을 먹게 될 지경까지 파괴되었는지에 대해 어떤 성찰의 기미도 보이지 않고 있다. 바로 이 점이 이 영화의 결정적 한계다. 요컨대, 공부 좀 하라는 소리는 멜 깁슨에게 고스란히 돌려줘야 공평하지 않겠는가.
자 이제, 이 필자의 현란한 기술을 마저 볼까요? 저는 진짜 감탄하면서 봤습니다. 예술이더군요. 멜 깁슨이 뺴 먹은 이유를 똑똑하고 유식한(곧 여러분도 될 수 있어요!!!) 필자는 유식한 권위있는 인류학자의 입을 빌려 말합니다. "단백질 섭취를 위한 것이었다!!그러니 비난 받을 일이 아니다!!"
일단 이 학설이 소수설이라는 것 쯤은 중요한 것 아닙니다(멍청한 독자는 모르니까) 더 중요한 것은 멜 깁슨이 빼 먹은 이유를 자신이 제시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제 멜 깁슨은 멍청하고 무식한 놈이 되고 자신은 지식의 수레를 타고 신의 영역으로 넘어갑니다~~~
통치전략의 일환으로의 대학살과 단백질 섭취를 위한 대학살 중 뭐가 더 나쁜 건지는 여러분이 판단하시고요. 중요한 건 멜 깁슨이 일부러 "통치를 위한 대학살, 민중의 관심을 딴데로 돌리기 위한 타 종족을 학살하는 아즈텍을 비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눈치빠른 학생들은 이미 부시행정부의 이라크 침공을 떠올리시는군요. 그러지 마세요. 이 필자에 따르면 멜 깁슨은 부시 빠돌이니까요.
너무나 극명하게 제국주의 영화, 아포칼립토
<아포칼립토>는 오프닝 컷 전에 경구가 하나 의미심장하게 떠오른다. ‘문명은 정복당하지 않는다. 스스로 멸망할 뿐. W. 듀랑’.
이 경구는 <아포카립토>가 앞으로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명징하게 드러내는 대목이다. 너무나 잔인한 마야와 아즈텍 원주민 족속들이 서로를 죽이면서 문명이 망했다는 것이다. 이 영화의 엔딩에는 아마도 1519년 멕시코만에 최초로 도착했던 코르테스와 그의 부하들의 배로 보이는 스페인 함대가 나타난다. 스페인 함대 도착 이전에, 썩을 대로 썩은 마야와 아즈텍 문명이 스스로 망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혹자는 마침내 자신과 가족을 구출한 주인공 ‘표범 발’이 가족을 데리고, 더럽고 야만적인 아즈텍 문명과 곧 다가올 스페인의 침략을 피해 더욱 깊은 숲으로 숨어 들어가는 엔딩 장면이 야만적인 폭력들을 거부하는 평화로운 용사의 기품을 드러내는 장면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장면만큼 멜 깁슨의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 또 있을까? 심지어는 그렇게 양쪽의 폭력을 피해 숨어들어간 ‘표범의 발’의 소수 후예들이 수 세기를 거치며 서구에서 건너온 전염병과 생태 환경의 갈취로 인해 지금 거의 인구 절멸 상태에 왔고, 밀림 속에서 근친상간을 하면서까지 종을 보존하고 있는 살 떨리는 고통의 상태를 알기나 하는 걸까?
자 이제 고급기술인 "논리의 비약"을 배울 차례입니다. 이제 필자는 더 이상 영화와는 상관없이 자신만의 세계를 펼치기 시작합니다. 뛰어난 창의력으로, 막힘없는 필력으로 멜 깁슨의 영화는 제국주의 영화가 되고 백인들은 원주민들을 구출하기 위해 등장한 구원자가 됩니다. 그 우울한 해변의 장면이 기억나시나요?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그 장면을 구원자의 등장으로 볼 수는 없겠죠. 하지만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멍청한 독자들은 이제 필자의 손 끝에서 놀아나는 겁니다.
백인과 원주민의 구도가 아니라 강대국, 또는 문명국의 이해관계에 죽어나가는 약소국, 또는 원주민이라는 것은 눈에 들어올 수가 없지요.
<아포칼립토>는 오프닝 컷 전에 경구가 하나 의미심장하게 떠오른다. ‘문명은 정복당하지 않는다. 스스로 멸망할 뿐. W. 듀랑’.
이라는 문구가 바로 타락한 미국에 대한 경고의 가능성일 수도 있다는 것은 전혀 생각할 수 없는 거죠. 이제 필자는 겉치레 식으로만 걸치고 있던 논리를 아예 벗어던지고 스스로 쌓아올린 왜곡의 성벽 위에 견고한 결론을 내립니다.
"이 영화는 제국주의 영화다!" "이 영화는 백인우월주의다!"
자, 여기도 야만적이며, 곧 다가올 더욱 새로운 야만도 다 싫어, 라고 말하는 건 무엇을 뜻하는 걸까? 그건 더욱 커다란 침략 행위와 권력을 은폐하는 도피의 언어다. 아즈텍 문명이 망하고 나서 원주민들은 다시 잘게 잘게 나뉘어진 작은 촌락 공동체를 이루며 자생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문명이 망하면 또다시 다른 형태의 문명이 소생하는 법이다. 하지만 메소 아메리카의 이런 자생적인 삶의 흐름을 통째로 흔들어버린 것은 누구인가?
바로 스페인을 비롯한 서구 제국주의 열강이었다. <아포칼립토>의 엔딩 장면에 슬쩍 나오는 바로 그 스페인 함대가 몰고 올 역사적인 재앙이었다. 멕시코 만에 도착한 코르테스를 비롯한 군인들은 유럽 마녀 재판 과정에서 단련되고 훈련된 인간 도살꾼들이었다. 그들은 총과 화약, 그리고 전염병을 들고 나타나 남아메리카와 북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그들을 질병 속에 허덕이게 한 역사상 가장 커다란 죄악 행위를 저질렀다. 한 문명이 아니라 두 대륙 전체에 걸친 자생적인 삶의 질서를 더 이상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붕괴시켰다. 1992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과테말라의 원주민 복원 운동의 대모이기도 한 리고베르타 멘추의 가족들과 마을 사람들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불태워 살해했던 게 누구인가?
이제 마무리 입니다. 갑자기 난데없이 백인들의 인디오 대학살을 상기시키면서 이제 영화를 벗어나 뜬금없이 백인들의 원죄를 들추어 냅니다. 거추장스러운 논리따윈 내게 필요없어!라고 외치는 듯 하지요. 독자들이 다시금 백인놈들의 간악함을 떠올리며 이 영화가 백인우월주의 영화라는 확인사살을 하는 거죠.글을 쓰는 유식한 필자분들은 이렇게 때로는 필요하면 과감히 논리를 버리고 감정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멍청한 독자들에게 잘 먹히니까요.
여러분도 잊으시면 안됩니다. 무비판적인 독자들은 읽는 그대로를 믿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여러분을 먹여 살릴것입니다.
이것이 내가 영화 <아포칼립토>에 대해 인종차별적이라고 주장하는 과테말라 원주민 복원 운동가들의 손을 들어주는 이유다. 비록 마야, 아즈텍 문명의 잔혹한 인신공양 의식을 부정하는 그들의 태도와 역사적 인식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더라도, 이 영화가 비백인 문명을 철저히 타자화하는 인종차별적인 주장에 동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들! 아직도 기억하시나요? 앞에서 과태말라 운동가들이 뭐라고 했죠? 마야문명 왜곡하지 말라고 했죠? 근데 지금은 인종차별 하지 말랍니다. 왜 필자는 이런 실수를 저질렀을까요? 실수가 아닙니다.
"멍청한 독자들은 기억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야문명 왜곡= 인종차별 아니냐구요? 물론 아니죠. 중국이 고구려 역사 왜곡한다고 그게 인종차별인가요? 하늘과 땅차이, 반시오니즘과 백인우월주의의 차이 따위하고는 비교할 수 없는 차이입니다.
그리고 난 궁극적으로 멜 깁슨의 <아포칼립토>는 이라크를 비롯해 중동에서 온갖 전쟁을 야기하고 있는 현재 미 제국의 전지구적 폭력 행위를 열렬히 은폐하고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미국이 손 대기 전에 이라크는 이미 망할 만큼 야만적이고 생화학 무기를 숨기고 있는 더러운 국가였어 라고 주장하거나, 혹은 모든 폭력에 반대하는 척, 후세인도 나빠 부시도 나빠 라고 양비론 뒤에 슬쩍 숨어버리는 건 무엇을 뜻하는 걸까? 최후에 남는 건 ‘은폐’뿐이다.
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아포칼립토>는 충분히 불쾌하고 충분히 기분 나쁜 제국주의 영화다. 마야와 아즈텍 도시에 살던 사람들이 갑자기 UFO를 타고 지구를 떠났다는 설정의 황당한 SF영화보다 훨씬 더 황당한 영화다.
마지막은 필자가 원하는 글을 쓰는 거죠. 요즘 유식한 사람들의 유행이 반미하고 반인종차별, 성평등 이런 거거든요? 예를 들면 과학문명 영화는 오딧세이, 조지오웰 1984따위 한번 들먹여 주고, 할리우드 영화는 일단 백인제국주의 한번 들먹여 주고 하면 있어 보이거든요. 그러면 정말로 유식하게 보인답니다.여기서도 이 필자는 제멋대로 제국주의 영화, 인종차별영화라고 결론을 짓네요.
이 영화가 반시오니즘 주의자인 멜 깁슨이 유태인의 꼭두각시가 되어 정권유지를 위해 중동을 침략하고 살해하는(영화의 아즈텍처럼) 부시정부를 비판한 것인지, 아니면 이 필자 말대로 아즈텍=이라크 인지는 똑똑한 여러분이 판단해주세요.
이제 여러분은 평론가의 글쓰기를 배웠습니다. 어떻셨나요? 이제 자신감이 생기셨나요? 정말 오랜만에 예술에 가까운 영화평론을 만나 저도 즐거웠답니다.
이런 영화평론은 8차 국어 교과서에도 실리고 그래야 하는데 말이죠.잊지마세요. 평론가처럼 글을 쓰는 여러분의 영훤한 밥은 "무비판적인 멍청한 독자"라는 사실을요~~~~~화이팅!!!!
오늘 이 글 보고 여러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본 글 출처는
http://movie.naver.com/movie/board/review/read.nhn?st=userid&sword=unicornsim&nid=632134
이 글 발견한 곳은
네이버, 홈월드 포에버 카페
이 분이 까신 내용은 당연히, 글의 논리입니다.
"A라는 결론을 도출하기 위한 a,b,c,d,e 라는 뒷받침 문장들이 서로 모순을 보여주기에 결국 이 글은 볼 가치도 없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분의 글에 달린 댓글을 보면 "치사하게 꼬투리 잡아서 따진다"라는 게 있는데, 꼬투리를 잡아서 따진다기 보다는 글을 조각조각으로 분해해서 전체적으로 봤을 때 잡아낼 수 없었던 문제점을 찾아낸 것입니다.
// 몇 번 다시 읽어보시면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글을 분석하지 않으면, 억지 논리에 휘말리기 쉽습니다.
이런 경우와 비슷하게, 많은 분들이 신문 기사나 사설을 보실 때 전체적인 주장을 볼 뿐 그것에 대한 뒷받침 문장을 안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럼으로 그 기사나 사설의 논리적 문제에 빠지게 되는 겁니다. 그런 이유로, 어떤 사람을 신랄하게 까는 기사가 주장만 있지 근거가 제대로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그 기사를 전적으로 믿게 되버립니다. 뭔가 전문적인 용어와 구조만 제대로 잡혀있으면 그대로 믿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저도 예전에는 그랬고 그렇게 살았습니다만, 글의 구조를 파악할 수 있게 되면서 어느정도의 궤변은 논리적으로 따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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