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하루하루

2015.9.24

1. 뭔 글을 써야할지도 잘 감이 안 잡히는 상황에 봉착하니, 뭐라도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 아래 눈 앞에 굴러다니는 글감들을 최대한 모아보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글을 쓰지 않는 습관이 들어버렸으니 글감이 있어도 글을 쓰지 않게 된다. 글을 쓸 필요가 없다고 강변하기도, 글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하였지만, 지금 드는 생각은 도대체 무엇을 위하여 글을 쓰는가냐라는 생각이다. 과거에는 자기 만족적 성격과 과시욕의 미묘한 균형 아래, 아니 아니 다시 생각해보니 과시욕이란 자기 만족 아래 글을 쓰던 시절도 분명히 있었던 것 같고, 무언가를 알리기 위해서 글을 쓰기도 한 적이 있기도 하고, 그리고 블로그의 방문자 수를 위해서 글을 쓴 적도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그 어떠한 때에도 내가 글을 쓰고 싶어서라는 순수한 내적 동기에 이끌려서 글을 쓴 적은 없는 듯한 느낌이다. 외적 동기가 사라지고, 불타오르던 화로에 넣을 장작이 없어지자 화로가, 화로 위의 주전자가, 그리고 그 안에서 끓던 물이 식어버리는 것과 같이 내 펜은, 아니 내 열 손가락은 더 이상 키보드 위에서 놀아나지를 않는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손가락은 더 이상 글을 뽑아내지 않고, 우물을 푸어 쓰지 않으면 메마르 듯이 내 머릿 속의 글감은 메말라 버렸다. 뭐 그게 나쁜 것만은 아니겠지.


2. 요 근래 꽤 많은 양의 보고서와 문서들을 쳐낼 일이 있었다. 사실 이런 보고서 작업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최대한 필요한 부분만 찾아서 짧게 쓰는 것을 선호하는 입장에서 보고서 숫자를 늘리거나 쓸데 없는 것들을 끼워넣는 것을 상당히 싫어한다. 그리고, 나는 내 자신을 혐오할 정도로 보고서를 쓰고 내용을 수정하고 그리고 도돌이표에 도착하여, 다시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그런 일들의 연속을 겪는 중이다. 사실, 문서화가 한 번 되고, 틀이 잡히기 시작하면 써야할 문서들의 숫자가 줄거나 아님 문서 작성 속도가 빨라져야 하는데 그런 건 존재하지 않고 계속 쌓이고 쌓이는 거대한 탑이 보일 뿐이다. 아무것도 진척이 안 된 채 탁상 공론을 하고 있는 상황을 보자면 실소가 나올 정도로, 나는 도대체 뭔 일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3. 사실 지금까지 대학에서 배우는 것들이 현장에서 제대로 쓰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내 행동의 기반은 논문과 책이었지, 대학에서 가르치는 구닥다리 수업들이 아니였기 때문이다. 메슬로의 욕구 5단계라던지, 파블로프의 개라던지, 중학교 사회 수업에서나 들을 이야기를 대학교에 와서까지 다시 듣고 이것을 적용시키고 그것으로 학점으로 평가 받는 시스템은 아직도 진저리가 날 정도로 싫었으며, 그 시간에 나는 대학교 전자 도서관 메타 검색에서 검색어를 두들기고 있거나 서점에서 책을 고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남의 건물의 주춧돌부터 다시 쌓아야하는 일을 하고 있고, 분명 설계도면상과 딴판으로 지어져가는 건축현장을 보면서 이걸 어찌하나라는 생각만 하고 동동 구르는 처지에 놓여있다. 뭐 사실 진짜로 콘크리트 붓고 철근 박아서 건물을 짓는 건 아니지만, 계획과 실천이란 두 단게에서 계획 설계가 완벽하기 비틀어져버린, 그리고 왜 설계된 계획대로 절대로 실천이 안 되는 상황에 놓여있는지에 대해서 잘 모르는 상황은 분명 재앙이 분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주춧돌 잡는 법부터 이야기를 해야하는데, 나는 그것을 가르칠 깜냥도 안될 뿐더러 그것을 잡는 방법까지 잊어버린 상황이고, 이걸 다시 이야기하기 위해 작년에 배운 그 구닥다리라고 생각했던 수업들의 자료들을 하나씩 다시 읽고 있다.


4. 정수, 정수란 무엇일까. 대학은 분명 학문의 정수를 가르치는 곳일까. 나는 구닥다리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을 꽤 잘 정제된 정수라는 생각을 할 날이 올줄은 몰랐다. 그렇다면, 나는 도대체 뭘 배우려고 했던 것일까. 사실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은 분명 대학이 그렇게 핵심적인 것과 필수적인 것을 가르치는 곳이라면 나는 도대체 뭘 해왔던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전에, 같은 수업을 들었던 동기들과 타과생들은 도대체 거기서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얻어갔는지에 대해서도 계속 생각하게 된다. 처음에 봤던 그 재미없던 슬라이드가 갖고 있었던 핵심들을 지금와서 발견한 것인지, 아님 내가 엄청나게 멍청해져 이 정도 내용도 이해를 못하게 된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기도 한다.


여튼, 문서화와 싸우고 있는 이 시점에서 나는 처음부터 다시 모든 걸 밟아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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