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오늘 아침에 글을 쓰려 여러 생각을 해뒀는데, 지하철 타고 학교가서 열심히 코딩하고 다시 집에 오니 머리속에서 다 날라갔다. 요즘 기억력하고 필력 모두 떨어지다보니 글 쓰는데 장애가 의외로 많은 거 같다. 거기에다 꽤 과거의 일을 서술하려고 보니 이리저리 틀린 부분들이 있다는 것도 양해해주길 바란다. 여하튼, 좀 길면서 쓸데 없는 이야기를 읽어줘서 고맙다고 미리 전한다.
때는 내가 고등학생 시절의 2/3를 보냈을 때였다.2011학년도 수능이 끝난 그 시절에 나는 학원 구석탱이에서 열심히 영어 문제를 풀고 있었다. 그 당시에 나름 공부를 한다고 생각하던 -지금 보기에는 처참하기 그지 없지만- 자신감 있게 외국어 문제를 40분 동안 풀고, 수리 가형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풀어내는데 여념이 없었던 그 시기에 대통령이 쉬운 수능을 내겠다는 발표를 했던 그 시기가 오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겨울 방학이 대충 흘러가던 그 무렵 TV와 신문에서 열심히 수능 개선 정책이라는 것을 떠들기 시작했다. 만점자 1%가 나온다는 듣도 보고 못한 그런 시험을 보겠다고 한 것이다. 고3 형들은 이미 떠나가고, 고1과 예비 고3 학생들만 남은 그 적막한 교실에서 학원 선생님께 "쉬운 수능이라면 저희들이 손해 보는거 아닌가요?"라는 질문이나 해대면서, 불안한 미래에 오들오들 떨고 있었던 아이들은 결국 고난의 행군을 하는 93년생과 94년생이 되어버렸고, 그 해와 그 다음해 재수학원의 돈줄이 되어버렸다. 과탐 과목의 단계적 축소와 만점자 1%라는 어마무시한 계획 아래 수리 가형 79점 1등급, 언외 90점 1등급이라는 개념은 삭제 되었고, 누구나 열심히 공부하면 만점을 받을 수 있는 세상이 도래한 거이다. 뭐 어디 그 낫과 망치가 국기에 그려진 그런 나라의 구호가 생각나긴 하지만, 그렇다 뭐 그럴 수도 있는 것이지.
사실 사교육 완화와 무조건적인 경쟁 배제를 통한 공교육 활성화라는 거창한 목적의식을 갖고 시행된 나름 잘해보겠다고 한 정책이었으나, 실질적 목적은 강남 학원 좀 죽이자, 혹은 특목고 너무 세니까 죽이자 정도 혹은 특목고나 강남에 대한 불만을 잠식시키기 위한 일종의 수단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 효과는 어떤 나라의 지도자가 "저 새는 해로운 새이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엄청나게 즉각적이고 효과적으로 나타났다. 수능 만점자 1% 프로젝트가 가동한 그 해, 6월 모의고사 수리 (가) 형의 경우 96점이 1등급 컷이었고, 언어는 6월 9월 모의고사 모두 98점이 1컷이었다. 이는 거의 모든 수험생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실제로 정부가 하라고 하면 진짜 한다는 것과 그리고 난이도 조절에 실패해서 6.x%가 1등급이 되버렸다는 것 이 두 가지는 학원 선생님들조차 당황을 하게 만들었다. "실제로 이는 6/9월 모의고사에서 1% 맞추기 위한 간보기 일 뿐 실제로는 1% 맞추기에 실패하여 1%보다 적은 사람이 만점자가 될 것이며 너희들은 예전처럼 공부를 하는게 낫지 않겠느냐?" 라는 말을 하기도 하였고, "변별력이 외국어에만 있으니 일단 수리는 대충 점수 올리고 외국어에 투자를 더 하는 쪽 -심지어 이과생인데!- 으로 선회하는 것이 어떻느냐?" 라는 소리도 들었다. 실제로 내가 기억하던 그 때는 거의 총체적 난국이었다. 등급이 엄청나게 오락가락하고, 문제 난이도가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했으며, 그리고 결국 수능까지도 난이도 조절에 실패를 하여 94/89/97이 각각 언수외 1등급컷이 되 버렸다. 언어는 예전에 나오던 약간 어려운 수준으로 나와버렸고, 수리는 그럭저럭, 그리고 외국어는 사상 최악의 등급컷이 되 버렸다. 외국어 1문제 틀리면 2등급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올 정도였으니 할 말은 다 한게 아니였던가.
이 이야기는 단순히 여기서 끝나지는 않는다. 파편화된 과거 기억들을 다시 끌어모아서 조립해 보자면, 내 아는 형이 재수를 해서 나랑 같이 수능을 봤는데 그 당시 쉬운 수능과 수시 제한 6개 (보통은 재수하면 대학에 무조건 붙어야하니 수시 원서를 인서울 상위권부터 중하위권까지 싹다 쓴다. 그래서 100만원 이상 쏟아붓는다고 들었다. 근데 이게 2MB정부부터 6개 제한이 걸렸다) 에 걸려서 결국 고3 때 점수보다 더 낮은 대학을 가버렸다. 고등학교 친구들이나 재수학원 친구들은 뭐 반수를 했더니 다시 복학이나 하고 있고, 입사제 넣었다가 광탈하고 수시 논술로 간신히 기어들어가고, 원서 3불합 뜨고 군대 입대 한 뒤 올해 수능 봤는데 수학이 92 떠서 인생 또 망한 케이스 등 엄청난 일들이 내 주변에서 일어났다. 그런 것 이후에 친구들의 인생이 어디서부턴가 좀 먹기 시작하고 망가지기 시작했던 건 뭐 어쩔 수 없는 결과였고. 나름 좋은 대학에 가서 "재수해서 대학가면 1년 동안 시간 날린거 보상 받으려고 열심히 공부한다고 그랬는데 그런거 불가능해 체력부터 딸려서 공부가 안된다"라는 걸 전화통에 대고 하소연하는 친구나, 대학가서 적성 안 맞는다고 대학 때려치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친구들을 보면 그나마 양반이라는 생각이 자주 들 정도다.
사실 이런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 키보드를 잡은 건 아니다. 하지만, 내가 꺼내고 싶은 말을 하기까지 좀 많은 배경을 제시 할 필요가 있었다고 생각했고,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수능을 보지 않았고, 그리고 수능이라는게 정확히 뭔지에 대해서 이해하지 않고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좀 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올해 수능도 말이 많다. 수학 B형 (이과용) 의 경우 1등급 컷이 100점대를 형성하고 있고 아마도 1등급 컷은 100점이 될 가능성이 농후해보인다. 1문제를 틀리면 2등급이 되고 1문제를 더 틀리면 3등급이 되는 상황이고, 결과적으로 수학의 변별력은 아예 없어져버렸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렇다면 다른 과목은 어떤가? 국어의 경우 국어 A형은 변별력이 그렇게 많아보이지도 않고, 국어 B형은 그 때 그 시절처럼 어렵게 나와버렸다. 1등급 90점 컷이라는 최악의 상황이 나와버렸고, 영어의 경우 98점이 1등급컷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 정도면 말이 많아야하는게 아니라 그냥 다 떄려쳐야하는 상황이다. 실제로 이렇게 된다면 대학간 점수 갭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아닌가? 상위 10%까지 점수대는 대부분 고만고만 할 것인데 이런 상황에서 수험생들은 또 눈치를 보면서 원서질 낚시질이나 할 것이 아닌가?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1등급 100점 나오게 한 평가원에 대한 공격보다는 "너의 미래는 수능이 결정하지 않는다" 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 "수능이 인생의 모든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라는 말일 수도 있겠다. 거기다 한 술 더 떠 "변별력은 문제를 어렵게 내는 것이 아니다" 라던지까지의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근데, 실제로 수험생 입장에서는 절대로 그렇지도 않고, 난 XX대 가기 위해서 수능을 봤는데 이제 "원서 영역에서 로또나 긁어야해"라던지, 특정 대학 특정 과 펑크 나서 막 막 XX대에 가서 공부 적응도 못할 애가 갑자기 들어간다던지의 일들이 일어났을 때 "너의 미래는 수능이 결정하지 않는다"라고 말 할 수 있는가? 문제는 그것이다.
심지어 의대나 치대를 준비하던, 한의사가 꿈이었던 학생들이 원하는 과에 못간다면 그것은 "너의 미래는 수능이 결정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결정이 됬네"라는 상황인 것일까? 아님 특정 대학에 가야지만 할 수 있는 직종 - 몇몇 외국계 기업이나 몇몇 직종들이 대부분 어느 수준 이상의 대학이나 특정 대학에서만 뽑는 경우가 많다. 뭐 가장 단순한 예는 사관학교 - 을 원했더라면 어쩌라는 것인가? 아니면, 서울에 사는데 지방으로 내려가야한다면? 근처 대학에 못가서 등교 시간이 6시간을 넘는다면?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 대할 수 있는가가 문제이다. 그리고, 수능 못봐서 대학을 못 가서 나중에 차별이나 커리어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은 어찌할 수 있는 것인가?
여기서 중점적으로 봐야할 일은 대학 서열화이다. 일단, 대학은 서열화 되있고, 서포카 - 연고 - 서성한 - 중경외시 같은 식으로 이미 급이 확실히 나뉘어져있다는 것과 그리고 이런 급들간 격차가 어느정도 "예상 가능한 정도"로 구분되어지는 장벽들이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대학 서열화가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이런 장벽들이 허물어지는 경우이다. 지금도 서서히 무너지고 있지만, 실제로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는 이런 것들이 아직도 많은 "판단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과 사회적으로도 사실상 학벌에 따른 차별 대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문제는 이런 것들이 정말 필요한 것인가?와 이런 것들이 유지 되는 원인이 무엇인가? 라는 것이다.
첫번째로 이런 것이 필요한가? 에서는 일단 대학 졸업장이 일종의 보증수표가 되었고 이는 사실 IMF 이후서부터 확실화 된 감이 있지 않나 싶다. 사실 그 이전에도 있다면 있었지만, 취직난이 곂치면서 이런 문제가 점점 더 심화된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주제와 벗어남으로 이야기를 안 하려고 한다.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두번째 즉, 이런 것들이 정말 필요한것인가? 라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가? 정말 필요한가? 아니 그러면 줄 세우기는 왜 하지? 아니 줄을 세웠을 경우에 모두가 만족을 하는 것인가? 불공평한 것은 아닌가? 이런 것들이 지속적으로 이야기가 나오는 건 사실이다. 그리고, 사실 올해 수능 덕분에 -수능 본 고등학생, 재수생, N수생에겐 미안하지만- 대입 제도나 교육 시스템이 좀 많이 바뀌었으면 하는 바램이기도 하다. 문제는 수능에 있지가 않다. 정확히 말해서 교육 혹은 입시 제도를 좌지우지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이 사람들이 공익이나 수험생 전체를 위해서 제도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표나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서 제도를 변화시키기 떄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근데 그것을 막을 방법은 존재하는가? 딱히 없어 보인다. 뭐 수능 만점자가 4%라고 대통령이 탄핵이 되는 것도 아니고, 끽해야 평가원장 모가지 날라가는 정도에 그치며, 방송에서는 "죄송합니다 대한민국 고3 학부모 여러분 저희가 잘못했네요 내년에 수능 잘 보시길" 이 정도 쯤에서 그칠 것들이 많다는 것도 고려해야한다. 사실 이렇게 교육이 개판이 되도 책임을 제대로 질 사람들이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제일 큰 문제이다.
이해찬 세대나, 만점자 1% 세대나나 대부분 정치 권력의 몇몇 구호 아래 제도의 대대적인 변화의 희생양일 뿐 아니였나라는 생각을 자주한다. 결과적으로 수능의 변별력이 없어진다면 결과적으로 대학들이 탈수능화 되겠지만 그 결과는 또 다른 입시 혼란과 그리고 교육 붕괴의 한 축을 담당 할 것은 확실한 거 같다. 아 대한민국 교육이여 어디로 가는 것인가.
대학 입시에 맞춰진 교육과 결과적으로 이 때문에 생기는 문제들은 간과 할 수가 없다. 수능은 그 문제들 중 하나의 불과할 뿐이다.거대한 균열 중에서 한 가닥만 잡고 뭐라 할 수는 없지 않는가. 솔직히 더 이상 이야기하기도 싫은 주제이기도 하고. 어디서부터 문제인지도 잘 모르겠다. 유구한 사농공상의 역사 때문인지, 아님 학벌 밖에 믿을게 없어서인지, 학연주의 때문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뭐 대부분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되었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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