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AI 시대의 블록체인, 블록체인 시대의 AI

한국에 돌아온 이후, 커피챗을 상당히 많이 했다. 뭐 별로 만날 생각도 없던 사람들을 만나거나, 아님 오랜만에 정말 근황이 궁금해서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을 만나거나 뭐 이것저것을 많이 했던 거 같다.

 

뭐, 코인 이야기를 하면, 결국 블록체인 산업은 대기업이나 금융권의 스테이블 코인 개발 사업 제외하고는 한국 애네서는 사실 살아남은 곳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는게 결론이 났다. NFT 사업 철수를 하는 대기업들을 사수하면서, 최종 낙동강 방어선을 저지하는 업무나 맡았던 내 회사의 말로를 보면 뭐 그렇지 않겠는가.

 

여튼, 7~8년 이상 블록체인을 하면서 본 아주 재미있는 현상은, 2세대나 3세대로 구분되어야할 사람인 내가, 1세대 코인 개발자로 분류가 되었다는 것이고, 진짜 1세대들은 깜빵가 있거나, 엑싯했거나, 아니면 뭐 어디선가 반 폐인으로 살고 있는 것 외에는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아마 2세대에서 3세대 사이에 들어왔던 나는 2.5세대 정도로 분류를 하자면, 그 당시 블록체인이라는 동네에서 무언가를 하고자 했던 선지자로 보였겠지만, 결국 내 놓은 답은 이 동네 탈출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라는게 결론 아닐까. 그런데, 나는 아직 탈출을 제대로 못해서, 업계에서는 대선배가 되었고, 빛과 희망을 뿌리는 존재가 되어있다는 것이다.

 

탈블에 대한 기나긴 커피챗을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던 와중에 우리와 같은 2.5세대들은 어디로 피벗을 하는가에 대한 주제가 나왔을 떄, 뭐 대부분 비슷한 결론이 나온거 같다. 돈 벌고 엣식하거나(가능성 0.01%), 탈블하거나 둘 중 하나라는 점. 블록체인이라는 것의 기술에 대해서는 뭐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붙잡으면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는 것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면서, 탈블 한 사람들이 어디로 갔는가? 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돌리니, 대부분 아는 사람들은 다 AI 판으로 가서 잘 먹고 잘 산다는 것이다.

 

블록체인 코어 개발이나 DeFi 개발을 하면서 대우 받으면서 다녔다면, 블록체인 업계의 그 막나가는 연봉 테이블을 맞춰줄 곳은 AI 업계 밖에 없고, 이미 AI에게 융단 폭격을 맞는 SI 사업이나, 돈줄 막혀서 서서히 쓰러져가는 Web2 (AI 제외) 업계들에게 이직이 가능한 상황도 아니라는 것은 잘 알 것이다. 왜 저 새X가 연봉이 1.8억인가 저기 저 클로드랑 챗지피티 같이 쓰는 우리 팀원은 연봉이 6천이어도 저 X끼보다 일을 3배 잘하는데 라는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AI 하이프는 DeFi Summer나 Web3 업게에서 자주 말하는 내러티브가 아주 이쁜 그냥 멋진 폰지 스캠에 가깝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아니 프론티어 모델을 만드는게 폰지 스캠이라고요?" 라는 질문을 할 수 있겠지만, 지금도 블록체인 잡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코어 개발 같은 블록체인계에서 AI의 프론티어 모델 같은 걸 만들고 있는 사람들이다. 확장성, 스케일링, 암호학, ZKP, 뭐 별의별 아이디어를 다 써가면서 인프라스트락쳐를 만드는 사람들은 그 인프라스트락쳐에 매몰되어, 아니 정확히는 그 인프라스트락쳐라는 주박에 묶여 벨리데이터로써 수 백 억원, 수 천 억원의 코인을 안정적으로 유지보수하는 일에 얽매여 탈출도 못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고, 뭐 이 동네에서 밈토큰이나 DeFi 포크 하나 두 개 떠서 돈 좀 땡기고 플렉스 한 사람들은 탈블 잘 하고서 AI에서 비슷하내 내러티브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을 너무 잘 보고 있다는 것이다.

 

솔직히, OpenClaw나 각종 에이전트들의 Skill 몇 줄 써 놓고 이것이 미래입니다 하면서 투자를 땡기는 행위는 사실 블록체인에서 이미 재현된 행위다. ERC20 토큰 200줄 짜놓고, 400줄짜리 DeFi 컨트랙트로 이것저것 뭐 붙여서 있는것처럼 백서 만들고, 백서 만들걸로 거래소 상장하고, 토큰 가격 오르면 던지고 파는, 이더리움의 컨센서스 엔진이나, 각종 로우레벨에서 돌아가는 것들을 하나도 몰라도 되는 아주 간단한 제일 달콤한 부분으로 먹고 살았던 행위랑 별반 달라보이지 않는다. 즉,  Fat Protocol의 제일 윗층인 달콤한 설탕 코팅 파트만 건드리고 건드렸던 사람들은 똑같이 프론티어 모델이라는 거대한 빙산에서, 제일 꼭대기 층을 향유하며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ERC20은 아무런 효용이 없었다고 반론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만들어진 많은 도움을 주는 skill이나 가드레일이나, 혹은 자동화라는 것과 비교했을 때 작업 난이도는 어떠한가? 대부분 에이전트에 30분 정도 리서치 돌리고, 그 리서치로 뭔가 찍어내고, 작동되는 거 같으면 배포하는 MVP도 아닌 뭔 즉석 뽑기 식품 정도로 돌아가는 구조를 갖고 있는게 아닌가?

 

그러면 이런 반박이 올 것이다. 개인이 발행한 ERC20은 아무런 내재 가치가 없지만, 개인이 만든 에이전트들은 가능성이 있고, 이미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을 서서히 대체해간다고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코인업계가 ERC20으로 2015년부터 사골 육수를 우려먹었다면, 프론티어 모델에 애드온으로 작동되는 것들은 사실상 사골육수도 아니고, 거의 오마카세와 같은, 각자의 재료의 본질을 살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서빙되는 하나의 음식이라고 할 수 있지 않느냐라는 반문이 그것일 것이다.

 

하지만, ERC20으로 만든 USDT와 USDC가 전 세계의 자금 흐름과 보안 산업(해킹)의 판도를 바꾸고, 이제는 해킹이 흥미와 국가 안보의 문제에서 기업의 존망 문제로 비하될 정도로, 그리고 랜섬웨어, 마약, 불법자료, 테러자금, 핵 개발과 연결 될 정도로 국제 자산의 무질서한, 그리고 통제 안된 유통을 이끌어냈다는 점을 잊으면 안된다. ERC20이라는 규격은, 결국 사회 현상을 바꾸어냈고, 그 변한 사회현상을 통해서 세상을 바꾼 것은 맞다. 다만, 이것이 이더리움이라는 틀과, 그리고 블록체인이라는 고리타분하면서도 변경될 수 없는 아주 제한적인 프로토콜 위에서 작동되기에 자산의 자유로운 이동이라는 하나의 패러다임만 바꾼 것일 뿐이다.

 

반면, AI는 더 많은 가치를 내재할 수 있다. USDT를 기반으로 한 DeFi들이 탈중앙화 되어있지만, 본질적으로 폰지스캠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대부분 밑돌 빼서 윗돌 괴는 형태로 구성도니 장기적으로 붕괴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지녔다면 -그것은 은행과 각 국가의 규제가 한 몫하기도 했지만- AI는 좀 더 다르게 개발자가 아닌 사람이 앱을 만들고 웹 사이트를 만들고 자신이 갖고 있는 컴퓨터의 다양한 파일들을 엮어서 자동화를 할 기회를 준 것도 사실이다. AI는 단순히 프로토콜이 아닌, 프로토콜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로제타 스톤과도 같은 것이기에, 일반적인 블록체인 혁명이라고 할 것에 비견하여 잠재력이 남 다른 것도 사실이다.

 

AI 이후의 보안, 정확히는 Opus 4.7 이후의 정보보안은 사실상 리버싱은 이미 끝났고, 일반적인 모의 해킹도 거의 완벽하게 자동화되는 지경에 왔다. 하지만, 사실 이 동네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레드팀 입장, 아니 정확히는 -아군이 아닌- 공격자의 입장에서 거의 장군님 축지법을 쓰는 수준의 자동화와 분석-공격-재분석 이라는 사이클을 거의 완벽하게 단순화 시킨 것에 있다. 결국 사람은 24시간이라는 시간 중에서 4시간을 자면서 수 십일을 버티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무너지는 존재이지만, AI는 충분한 양의 그래픽카드나 충분한 양의 토큰만 있다면 끊임없이 분석하고 공격을 진행하다. 동일한 한 해커가 공격을 하는 속도의 수 배의 속도로, 수 년차의 실전 경험이 있는 해커보다는 덜 떨어지고 멍청할지라도, 될 때까지 공격하는 끈기는 인간을 아득하게 넘어선 상태인 것이다.

 

음, 근데 왜 블록체인이랑 AI이야기하는데 해킹 이야기나 하냐고...? 사실 몇몇 섹터는 수 년간 블록체인이 공격하고자 했던 섹터를 부수는 속도보다, AI가 기존 섹터를 공략하는 속도가 너무나도 빠르기 때문일 것이다. AGI라는 형태가 나올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정보보안이나, 일부 프로그래밍이나, 일부 수학과 물리학, 화학, 약학 파트는 충분히 빠르게 대체가 될 부분들이 보이는 상황이라는 것이고, 블록체인과는 다르게 세상을 바꾸는데 거침이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보안 업계가 1년만에 그냥 말 그대로 쑥대밭이되고, 해커라는 직종 자체에 회의감을 느낄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보안을 포기하거나, 뭔가 전향을 하거나, 아니면 AI를 쓰는 AI 스웜을 컨트롤하며 일종의 드론 군단을 조정하는 전투병이 되는 수준이 되어버렸다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면, 앞서 말한 것처럼 Fat Protocol의 제일 단 부분을 빨아먹으면서 사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은 유효하지 않은 것일까? 설탕의 깊이도, 맛도, 그리고 퀄리티도 블록체인과 다른데, 어떻게 블록체인에 비빌 수 있느냐라는 말을 하지 않을까?

 

하지만, 인간의 인지능력과 인간의 사고능력은 AI가 만들어내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검토 조차도 AI에 의해서 다시 되먹임을 하는 시대에, 정말 이게 제대로 된 설탕인지, 아니면 그냥 설탕맛이 나는 그냥 사기인지에 대해서는 구분이 가능한가에 대한 질문이 남는 것이다. 충분한 전문가들은 알겠지만, 무지성으로 DeFi에 꼬라박고, 무지성으로 가즈아를 외치면서 코인을 샀던 것처럼, AI를 통한 무언가는 -그게 오히려 다행이긴하지만- 결국 거래소에서 거래만 안 될 뿐이지 사실 무지성 베팅만이 남은 무언가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아직도 코어 개발하고 생태계를 개선하는 블록체인 개발자가 있고, AI에도 대부분 수 억개의 파라미터들을 보면서 리서치를 하는 수학자와 프로그래머들과, 그리고 메모리와 GPU와 싸우는 하드웨어 엔지니어들이 있단느 것은 잘 안다. 하지만, 결국 레몬 시장인 것처럼 그들이 그렇게 보상받지 않는 상황이 올 것이며, 결국 이런 레몬시장은 무의미한 쓰레기만 쌓아서 생기는 새로운 지옥을 만들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블록체인이 그러하였던 것처럼.

 

아 근데, 블록체인 업계는 아마도 AI 하이프로 아예 다른 세상이 되지 않을까 싶긴하다. 스마트컨트랙트를 100% 자연어로 쓸 수 있다면, 이제 진정한 의미의 스마트계약이 오는 시대가 올 것이고, 더 이상 조잡한 y*x =k 라는 공식에 얽매일 일도 없으니.

 

뱀발) 음 더 말하고 싶은게 있긴한데, 사실 한국 AI 산업은 KIMI k3을 보면서 반성해야한다 정도로 말을 줄이겠다. 왜 중국은 저기 진짜 창고에서 프론티어 모델을 만드는데, 왜 한국은 NPU, AI 반도체 이 난리를 치는지도 모르겠고, 돈을 그렇게 쳐 쏟아 붓고서 제대로 된 모델 하나 못 내놓고 사업부 철수하는 꼴을 보자니 참 울화통이 터지는 것이다. 뭐 그렇기에 이제 진짜 AI 프론티어 개발을 하는 플레이어들이 나오겠지만 말이다. 아마 프론티어 전쟁은 지금부터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