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끄적끄적

위키

    Web 2.0 혹은 양방향성 소통이 가능하다는 증거로 위키피디아는 지금까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책과 논문에 인용되왔다. 그리고, 집단지성과 대중에 의한 지식 검증이 가능하다는 인터넷의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로 포장되었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혁신의 사례로써 언급되었었다. 하지만, 현재 위키피디아를 위시한 대부분의 위키들은 과거의 영광과 위신을 잃어버린 듯 하다. 정확히 말해서, 집단 지성이라는 것이 더 이상 트랜드가 아니게 되었고, 위키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나 버렸다. 아직까지도 숙제를 위키피디아에서 배끼는 학생들이 있지만, 그것은 브리태니어 백과사전이 위키피디아에 의해 "멸종" 당했기 때문에 그런 것 뿐이며, 또한 구글에서 최상위 검색으로 뜨는 것이 위키피디아이니 그런 것이다. 이런 사례를 제외하고는 점점 위키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줄어들고 있으며, 점점 활력을 잃어가는 것 같다.

    사람이 줄어든다고 해서 위키 서비스가 아예 망하는 것은 아니다. 위키는 일종의 인터넷 상의 도서관 역활을 하는 것은 분명하다. 다양한 것들에 대한 자료가 구비되어 있으며 그 자료들의 전체적인 것을 알 수 있는 일종의 Index 역활을 해주고 있다. 그러나, 위키가 갖고 있었던 장점은 점점 사라지는 것 같다. 실제로 위키가 어떤 다른 매체보다 우위를 갖고 있는 것은 다수의 대중에 의한 신속한 데이터 업데이트와 후속 검증이었다. 정보 업데이트는 방송보다 빨랐고, 정확도는 신문과 얼추 비슷했었다. 과거 런던 테러 사건이 일어났을 때, 사건 관련 정보를 제일 빠르게 볼 수 있었던 곳은 라디오도, TV도 아닌 위키피디아였었고, 이는 Web 2.0 시대에 기존 미디어가  더 이상 쓸모 없다는 걸 방증한다고 언론에서 이야기를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누구도 위키가 빠른 데이터 업데이트와 정확성 모두 겸비한 매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집단 지성의 힘을 빌렸던 위키는 한 떄에는 빵빵한 풍선이었지만, 유저라는 공기가 빠지자 예전의 그 모습을 유지를 할 수 없게 되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같은 SNS로 사람이 몰렸으며, 트위터에서는 대규모 선거운동의 장이자 초 단위의 정보가 올라오는 창구가 되었고, 페이스북은 아랍 민주화 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 이 이후, 대안 언론들이 부상하였고 버즈, 허밍턴 포스트, ppss, 고발뉴스 같은 사이트들이 뜨기 시작하였다. 정식 기자는 아니지만, 원고료를 받고 자기 자신이 알고 있는 분야에 대한 글을 쓰고 그 글을 다수의 SNS 유저가 소비함으로서 정보나 가십거리를 전파시키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이는 단계적으로 기존 매체와 위키의 역활을 대체해 나가고 있다.

    그 누구도 지금이 Web 2.0인지 Web 3.0인지 심지어 Web 4.0인지에 대해서 신경쓰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위키는 Web 2.0이라는 틀에 아직도 묶여있는 듯한 느낌이다. 이 글을 쓰게 된 엔하 위키 - 정확히 말해 (구)엔하위키, 리그베다 위키 편의상 엔하 위키로 기술 - 의 느리고 부정확한 데이터 업데이트는 분명 이 글의 주된 이야기거리이기도 하다. 위키가 갖고 있었던 태생적 한계들은 유저 수가 많았을 때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데, 이는 끊임없이 데이터가 수정되고 교정되기 때문이다. 또한, 그 분야 - 정확히는 위키의 몇몇 문서- 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위키에 참여해 데이터를 갱신하고 피드백을 받고 다시 데이터를 갱신하는 작업을 반복하였다. 그렇기 떄문에 폭발적으로 데이터들이 생성 될 수 있었던 것이고,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데이터의 생성량은 정점을 찍게 되었다. 이는 앞서 말한 IT의 트랜드의 변화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더 이상 새로 생성될 페이지가 많지 않다는 것과 데이터 유지 보수 쪽으로 넘어가버린 상황도 한 몫했을 것이다. 도서관 초창기에 엄청나게 책을 사들이고 증축을 거듭해 서고의 크기를 늘리는 것이 과거 위키의 모습이라면, 지금은 이미 축적된 도서의 상태를 검증하고 오탈자를 수정하는 쪽에 주안점을 둔 모습이 현재의 위키인 것이다. 분명 새로운 신간들은 신간란에 꽂혀있을 것이며 사람들이 제일 많이 빌려가는 도서일 것이다. 하지만, 사서들 -정확히 말해서 위키니트- 이 계속 신경써야할 것은 신간이 아닌 책들과 고서들의 상태 점검이다.

    글을 새로 쓰는 것보다 글을 수정하고, 갈아엎는 쪽이 정신적인 면이나 육체적인 면이나 심지어 시간적인 면에서 엄청나게 소모적인 일이라는 것은 글을 써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그리고, 이 일을 지금 위키 유저들이 무상으로 해 왔으며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다만, 불행한 소식이 있다면 그 인원수는 점점 줄어드는데 있다. 그리고, 인원수가 줄어들 수록 위키의 장점인 교차 검증과 빠른 갱신이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된다. 과거에 엔하 위키에 대한 비판은 대부분 정보가 그렇게 정확하지 않으며, 업데이트가 그렇게 빠르지도 않다는 것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하 위키가 위키계에서 3위권 내에 있었다는 것은 분명 충분한 수요가 있었기 때문이고, 아직도 나 같은 사람들이 엔하에서 정보를 찾아다니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엔하 위키에서 글을 뒤질 때마다 내 지식과는 상충되는 이야기나 아니면 상당히 부실한 페이지를 보면서 이를 어떻게 봐야할지에 대한 생각을 좀 하게 된다. -사실 페이지 편집 한 적 없다-

    사실 이 글을 쓸 때 진짜 "엔하 위키는 왜 개판인가 왜 업데이트가 안되는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중둥둥 떠다녔고, 글감도 위키피디아 몰락을 서문으로 "엔하 위키가 왜 개망인가에 대해서"라는걸 본문으로 잡고 열린 결론으로 마무리하려고 했는데, 정작 글을 쓰다보니 생각이 정리되면서 이런 글이 나와버렸다. 더 이상 새로 쓸 것은 많지 않은데 지속적으로 유지보수를 하려는 것이 지금 위키가 갖고 있는 한계이고, 이 때문에 점차적으로 사람들이 이탈하고 있고 유지 보수는 더욱더 힘들어진다. 라는 것이 중요한 거 같다. 과거 위키가 갖고 있었던 특징들을 SNS가 흡수하고 대안 언론들이 신속성과 정확성 모두를 가로채가면서, 위키는 지금의 웹의 중심에서 한발짝 물러선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이는 TV가 라디오가 갖고 있었던 오락과 뉴스라는 특징을 가로채고 라디오의 종말을 선언한 것과 같이 섣부른 판단일지도 모른다. 라디오는 이런 상황에 적응을 하였고, 결과적으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매체가 아닌가.

    위키가 취하고 있는 글의 생성-유지-보수 방식이 변화활 떄가 된 것 같다. 새로운 사실이나 변화가 있을 때 마다 유저의 자발적 참여로 그것이 언급된 글들을 하나하나 찾아 수정하고, 스레드 형태의 수정 알림을 통해 유저들이 피드백을 주는 형식은 위키가 개선해야할 부분이 아닌가한다. 태깅 같은 방법을 통해 글들을 묶고 이슈가 발생함에 따라 그 글들을 빠르게 갱신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고, 위키의 접근성을 높여 페이지 뷰를 높이고, 사람들의 글 수정을 끌어올릴 이유들을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이는 분명 쉽지 않은 건 확실하다. 그리고 뜬구름 잡는 소리인 것도 맞다. 하지만, 위키를 도서관에 비유했듯이 위키는 분명히 웹상의 데이터나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을 쉽게 재조직해서 한 눈에 볼 수 있게 해주는 인터넷상의 도서관 혹은 Index의 역활을 수행한다. 위키는 분명히 존재해야하고, 지금의 문제점을 돌파하는 방법은 지금 새롭게 쓸 수 있는 기술들과 새로운 개념들을 채용해 변화하는 방법 밖에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