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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3 12:13 - Bengi

청와대 국민청원과 KISS

1. 소프트웨어 개발론부터 경영까지 "Keep it short and simple"이라는 개념은 중요하다. 간단하고, 짧고 이해하기 쉽게 만드는 것 만큼 유지보수를 쉽게 할 수 있게하는 방법이 그렇게 많지 않기도하고, 뭔가를 설계할 때에도 설계 변경을 용이하게 할 수 있으며, 구현시 자잘한 예외 사항들을 덜 마딱드리게 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2. 사실 현대 민주정, 삼권분립 체계라고 하는 시스템은 상당히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시스템이다. 국민에게 주권이 존재한다는 명시적인 형태를 띄고 있지만, (특히 대한민국의) 삼권분립은 실질적으로 완벽한 견제 체제를 구축할 수 없음을 꽤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정부라는 형태의 권력은 형성되어있고, 이러한 상황에서 주권은 제한적인 형태를 띌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는 일반적으로, 복잡한 행정 시스템과 관료주의, 절차주의에서 오는 경향이 큰데, 일반 시민이 국가가 하는 일에 대한 감사와 평가를 할 수 있는 방법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 때문이다. 법적 쟁점을 해결 하기 위해서는 헌법 재판소까지 일을 끌고 가야하거나, 아니면 각 부처들에게 각각 행정 소송을 걸어야한다거나, 아니면 여론전이라는 정말 기나긴 싸움을 해야한다거나 대부분 제한적인 방식으로 국민은 시스템을 뜯어 고칠 수 있다.


아, 뭐 입법권을 지닌 국회의원을 제대로만 선출한다면야 제대로 된 입법을 하고, 뭐 정당 수준에서 어떻게든 많은 것들을 해결하겠지...? 9년 동안은 못 그랬지만 말이다. 실제로, 국회의원의 임기가 4년이라는 것과, 대통령 임기가 5년이라는 것들은 잘못된 판단이나 투표한 사람들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행위를 하는 것에 대한 응징을 그렇게 빠르게 시행시킬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뭐 촛불로 광화문 광장을 물들이고, 헌법 재판소가 결정타를 찍었던 그 과정이 짧게 보면 2년, 세부적인 과정을 살펴보면 길게 4년이 걸렸다는 것과, 이러한 교체 과정은 그렇게 효율적이지 못했다. 거기에다가, 국민은 그 긴 시간동안 행정부에 대한 응징과 동시에 입법부, 사법부와 지속적인 싸움을 벌여야했다는 것을 상기해보자. 실제로 엄청나게 긴 싸움이다. 민주정에서 정부를 상대해야한다는 것은.


3. 청와대 청원이 상당히 핫하다. 뭐 앙상블스타즈 한국판에 대한 청원을 내지를 않나, 게임 팀장을 내려달라는 청원이 나오지를 않나, 상당히 재미있는 것들이 올라오는데, 사실 청와대 청원이 갖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상기시킬 수 있는 일이다. 삼권분립이라는 말을 써가면서, 낙태죄 폐지에 대한 청와대 청원이 의미가 없다거나, 아니면, 의료용 대마 합법화나,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같은 것들을 청원하는 것들이 한심하다고 생각하거나, 암호화폐에 대한 규제 철회에 대한 청원들을 보면서 한숨을 내 짓는 경우들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내가 청와대 공식 답변이 나오건 말건 일단 이슈화만 시키면 된다는 생각으로 위의 언급한 청원(당연히 앙스타는 안했지)에 다 참여했다는 것을 안다면 좀 경악스러워 할지도 모르겠다.


4. 실제로 청와대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렇게 많지 않다. 행정부 수반으로써 할 수 있는 일은 행정부에만 있고... 뭐.... 그런게 ...... 사실 그렇지 않다는 것은 이명박근혜 떄 뭔짓을 했는지 알기만 해도 말이 안나오겠지만, 실제로 대통령은 입법부와 사법부를 직간접적으로 컨트롤 할 수 있는 권한들을 갖고 있다. 입법부의 경우에는 대통령 권한으로 헌법 개정안을 발안 할 수 있으며, 법률안 제출권도 있으며, 국회에서 통과된 법안에 대한 거부권인 재의권 (법안에 대한 재의결 요구)을 갖고 있다. 그리고 제일 잘 알려진 것은, 대통령 특사일 것이다. 경제 사범이나 각종 경범죄자들이 매년 혹은 선거철마다 대량 사면 되는 이유도 이것 덕분이다. 사법부의 경우에는 대법원장 임명권을 대통령이 갖고 있으며, 대법원장은 대통령 및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법관을 임명하게 된다. 즉, 사법부의 기조를 결정할 권한도 갖고 있는 것이다.


이런면에서 청와대 청원은 상당히 재미있는 제도이다. 청와대에서 단순히 답변을 주는 것만으로도 일종의 각 부처별 시그널을 주는 행위이기도하고, 정부 전체의 입장을 이야기하기도하며, 청와대만의 입장을 이야기 하기도하는 이중적인 형태를 띄고 있다. 청와대에 올라온 모든 청원이 다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충분히 어그로를 끌고, 대통령이 갖고 있는 특권이나 행정부에서 취할 수 있는 행정 명령, 세칙 등을 잘만 이용한다면, 실제로 많은 문제들이 해결 될 수 있다는 것도 상기를 시켰으면 좋겠다. 많은 국민들은 복잡한 절차를 걸쳐서 이러한 시스템적 부조리를 해결할 힘이 없다는 것과, 이전에는 시민단체나 각종 정치적 이해집단의 힘을 빌려야했던 것이 청와대 청원을 통해서 좀 더 간결한 형태로 해결이 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에 의의를 두지 않아야 싶다.


5. 청와대 청원은 언젠가는 폐지가 되어야할 제도이긴 하다. 청원의 종류나 청원의 범위를 본다면, 행정부가 건드리면 안 될 부분까지 청원이 올라오고 있으며, 청와대 청원의 규칙에 따라서 일정 수의 인원이 서명만한다면 이러한 부분들에 대해서 대답을 하게 될 수 밖에 없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이 문제에 대해서 해결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해결책을 강구해 내야한다는 문제가 존재한다. 이슈화는 되겠고, 정부의 공식 입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들을 수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절차나 과정을 무시한 채 단순히 다수가 불만을 갖고 있다고 하여 "대통령에게 묻습니다" 코너에서 시시콜콜한 것까지 묻는다면 그것 또한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KISS를 생각해본다면, 민주정이라는 대의 원칙 아래, 직접적으로 민주정 시스템에 참여하도록 사람들을 유도하고, 결과를 두 눈으로 볼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는 충분히 역할을 다 했다고 본다. 아마도 다양한 시행착오들이 오갈 것이며, 서명이라는게 다수의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 행위라는 걸 생각한다면, 청와대 청원이 갖고 있는 그 무게에 대해서 사람들이 깨달을 수록 서명을 하는 행위에 대해서 더 생각을 할 것이고, 결국 자정작용이 일어나지 않을까 싶다는 것이다.


민주정은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정치고, 국민의 참여로 유지되는 정치 체계이다. 거기서, 참여 창구가 하나 더 늘었다는 것에 의의를 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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