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하루하루

2016.06.05

과거의 글들을 읽으면서 과거의 나와 소통을 할 때마다, 그 당시 내가 얼마나 오만하였고, 잘났었는지에 대해서 살필 수 있는 기회를 자주 갖는다. 하늘을 날라 다니다 사냥감이 나타나면 급속도로 하강을 하여 목표를 내려찍는 매와 같은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데, 보통 이런 수준의 글을 쓰기 위해서는 꽤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여야만 했었다. 예를 들어, 그 당시 다국적 기업의 운영에 관한 리포트를 써 낼 일이 있었을 때, 제품 다각화를 통한 브랜드 이미지의 희석이나 부채를 감수하면서 해외 시장의 과도한 투자들이 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쓸 때, 수 천 페이지에 이르는 기업 투자 보고서와 신용 평가 보고서를 봤어야만 했었다. 그리고, 주어진 정보들을 조합하고, 추론을 통해 기업이 처한 상황을 파악하고, 기업에게 대안을 제시하는 일련의 논리적 전개를 이끌어 냈었고, 그리고 그렇게 내가 매일 밤을 새면서 했었던 기말 리포트는 그렇게 완성 되었다. 길고 장황하고 공격적이고 날카롭게.


오늘, 아니 요 근래, 글쓰기에 대해 다시 생각할 일들이 생기게 되면서, 과거에 썼던 글들을 다시 보게 될 때마다 이런 장황함을 어떻게 줄이면 되는가가 생각이 난다. 점점 삶을 살면서 이렇게 길고 장황한 글보다 짧고 간결한 글들을 선호하게 되고, 다양한 단어의 선택보다는 명료한 단어의 지속적인 사용을 추구하는 쪽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이런 것들은 아마 공대생활을 오랫동안 하면서 쌓이게 된 습관인 것 같다. 재사용성, 명료함, 컴공스럽지만, 싱글톤, 이런 개념들의 사용은 뜻을 명료하게 하고, 잘못된 이해를 줄여준다. 하지만, 이런 관점에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점점 다양한 시점을 제시할 기회나 비교할 방법은 점점 사라지는 것 같다. 명료함은 결국 일종의 가지치기이고, 가지치기는 다른 방향으로 나갈 가지들을 잘라내니.


아마도, 이런 명료하고 핵심만 보는 글을 쓰는 이유는 점점 순수함을 추구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복잡한 상황을 가정하고 이를 분석해나가는 일은 재미있지만, 누구를 가르치거나, 상황을 이해시키는데에 있어서는 그렇게 좋은 방식이 아니다. 다양한 가치들을 평가하고, 우선순위를 매기는 일은 각각의 가치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부터 알아야하기 때문인데, 만약 어떤 가치를 모른다면, 결과적으로 전체 그림을 보지 못하거나 그 가치가 갖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는데 꽤 큰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일 것이다. 뭐 그래, 어드밴스드 레벨과 베이직 레벨 중 베이직 레벨 쪽으로 점점 기울고 있다고 해야할까.


점점 내가 내 주변을 보면서 실망하는게 커져갈수록, 아니 도대체 내가 공부하던 사람들의 주장이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였을 때와 달리 그 사람들의 시대를 공부하면서, 얼마나 그렇게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그런 말을 하고 실천해나가려고 했는지에 대해서 배울 때마다, 이런 작은 단위로 환원하려는 성격이 더 커지는 것 같다. 정말 작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조차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서 큰 걸 바랄 순 없는 일이고, 복잡한 시스템이나 논리를 도입하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텐데 왜 그것에 대해 논의하려고 하는가에 대한 생각이 점점 내 자신을 잠식해 나갈 때마다 점점 이러한 경향성은 커지는 걸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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