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하루하루

2016.04.17

시험 기간이란 짧은 자유 속에서, 열심히 공부 중이다. 수업을 잘 안 듣고 필요한 부분만 기억해두는 습관 덕분에 수업 슬라이드를 처음부터 끝까지 필사하고, 텍스트북의 연습 문제를 모조리 풀면서 시험 대비를 하고 있는데 사실 이처럼 비효율적이고 재미없는 일이 어디있을까라는 생각이 잠시 든다. 메모리 구조와 같은 것들을 외운다고 해서, 그걸 설계를 할 것도 아니며, 심지어 설계를 한다고 해도 이 정도 수준의 추상화된 것을 갖고 제대로 작동되는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뭐, 그래 회로이론과 같은 것을 배우고, 기본적인 플리플롭들을 이해하면 추상적으로 나타낸 메모리를 설계를 어떻게든 해 낼 수는 있겠지. 요 근래 스터디를 하면서 VHDL로 캐시 컨트롤러를 만들고 있으니 뭐 잘 배웠다라고 해야하나?


졸업 논문을 걱정해야하는 시기로 돌입하면서, 나는 내가 무엇을 해야하는지에 대해서 잠시 고민을 할 시간을 갖게되었다. 아니 그 전에, 나는 이 대학에서 무엇을 배웠는가에 대해서 점점 큰 고민을 할 기회를 얻었다. 뭐, "대학에서 배우는게 없다, 없다, 없다...!"라고 외쳤던 시절도 존재했지만, 정말로 배우는게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사실 "타 대학에서 쓰던 슬라이드 재활용 좀 할 수 있다는 거"라던지, "타 대학에서 만들어낸 교육 프로그램 좀 임포트 해 올 수 있다는 거"라던지 뭐 솔직히 많은 걸 배우긴 했다. 한국 대학 교육 과정이라는게 사실 대부분 그 수준에서 벗어나질 못한다라는 거는 당연한 것일테고, 그 수준에서도 나름 모교라는데가 그나마 괜찮은 수준의 교육 과정을 제시해준다는 걸 깨달으면서, 비판을 할 기운도 사라졌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일까.


학교에 있는 많은 교수님들이 그런 흐름을 거스르려는 노력을 하고 계신다는 것도 물론 알고 있다. 슬라이드를 직접 만드시고, 문제를 자체 제작하고, 다양한 과제를 내 주시는 그런 분들이 있기에 내가 학교에 그나마 발을 붙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나는 그런 노력과는 반대로 가는 사람이 된 거 같다. 요 근래 시험 문제에 답이 명확하게 없는 걸 냈다고 화를 낸 적이 있었는데, 생각을 해 보면 실제로 그 과목에서 핵심은 접근방법이었지, 문제를 푸는 기술이 아니였다. 내 자신이 학점을 쫓고, 쉬운 문제들을 바라기 시작했으니 이런 반응이 나오는 걸텐데, 예전처럼 그놈의 학점이 중요한게 아니고, 내가 명예롭다고 생각하는 일을 저돌적으로 밀고 나가고, 쉬운 길보다 어려운 길을 택하던 그런 모습으로 다시 되돌아가야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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