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끄적끄적

쓰지 않는 이유, 그리고 쓰는 이유

사실, 요즘 글을 잘 쓰지 않는다. 글을 쓸 생각이 없는 것도 한 몫하고 글을 보여줄 독자도 없는 것도 한 역활을 했었으며, 시간이 없다는 문제 또한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을 안 썼던 제일 중요한 이유는 내가 글을 쓸 자격이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있었고, 그것에 대한 해답을 아직 내놓지 못했기 떄문일지도 모른다. 사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가면서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한 줌에 불과하다는 (매번 글 쓸떄마다 하는 소리지만) 것을 깨닫고 계속 공부해 나가는 과정 속에 있으며, 글을 쓰면서 레퍼런스의 부족이나 논리의 취약함을 매번 느끼며 글을 날려버리는 짓거리를 계속 반복하고 있다. 사실 이런 선택은 그렇게 좋지 못한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대부분의 업적들은 "뿅"하고 나타나는 것이 아닌 지속적인 연습과 수련을 통해 나오는 것이고, 글쓰기 또한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지속적으로 글을 쓰고, 첨삭을 받고, 그리고 글을 고치고, 비판하고, 분석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글을 찟어 발기면서, 새로운 글을 써 나가는 일을 통해서야만 더 좋은 글이 탄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필력도 근육처럼 계속 연습하면 늘어나고, 오랫동안 쓰지 않으면 줄어드는 거소가 같다. 그리고, 난 꽤 오랫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이유야 앞서 말한 것과 같다지만, 사실 내가 글을 주로 쓰던 동기가 내가 더 이상 펜을 들지 않게 하는 원인이 된 것 같다.


많은 글들은 사람들을 설득하거나, 교화 시킬 목적으로 쓰여진다. 대표적으로 신문 기사나 인터넷에 돌아댕기는 짧은 글 조차도 어떤 정보를 던져주고, 사람들의 행동을 변화시키는데 주목을 한다. 사교나 친목의 목적으로 쓰여지는 글들은 SNS 상에서 자주 볼 수 있지만, 140자 정도의 틀에 갖힌 단어들의 나열은 그렇게 큰 의미를 지니지도, 그렇게 큰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한다는 건 확실한 것 같다. 트위터에서 벌어지는 키배만 봐도 허공에다가 칼질만 하는 것의 연속이라는 것을 보라! 문제는 나 같은 사람도 교화적 목적의 글을 써왔다는 것이고, 대부분 독자층이 정해져있거나, 혼잣말에 가까운 글들이라도 대부분 기승전결이 나름 갖춰진 전체적인 스토리가 있고 이를 통해 뭔가 이야기하려는 게 분명한 글들을 썼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런 글들이 어떤 좋은 결과를 내는지에 대한 확신을 세울 수 없게 됬다. 첫째로,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정확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나왔고, 둘째로 교차 검증을 통해 제대로 된 지식을 갖고 있음이 확인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어떤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쓸 떄 적절한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고, 셋째로 설사 어떤 주장을 펼치기 위해 지식에 기반한 적절한 근거를 찾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주장이나 근거가 전체적으로 약화될 수 있는 반례가 있을 수 있는 가에 대한 정보가 없었기 때문이다. 뭐, 이렇게 복잡하게 글을 쓰고 앉아있냐라고 물어본다면, 보통 글로 뭔가를 하려는 사람들은 다 이렇게 살 것이라는 걸 말을 해주고 싶고, 대부분 내가 무엇을 안다라고 하는 상황은 내가 아는 무언가를 완벽하게 반박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아니, 어떤 것을 아는데 그것을 모르는 것이라고 반박할 수 있다는게 말이 되는가? 라는 질문을 할 수도 있겠으나, 어떤 사태에 대한 평가나 주장은 대부분 반례에 대한 반례와 반례에 대한 반례에 대한 반례와 반례에 대한.... 이런식으로 끊이 없는 기나긴 사슬 속에 놓여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 보통, 반례에 대한 반례에 대한.... 아니 간단하게 말해서 8번 정도 내 의견과 상대방 의견이 엎어지는 경험이나 혼자서 반례에 대한 반례를 만들어내는 사고를 하지 못한다면, 나는 그 의견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지 않음"을 선언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나는 요즘 이런 선언들을 많이 하게 된다.


어떤 가치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다수의 가치들이 동원된다. 그리고, 아마도, 논쟁의 중심에 있는 것들은 동원된 다수의 가치들이 서로 상충되고 있을 때일 것이다. 절대적인 두 가치가 충돌을 하거나, 아니면 의심할 여지도 없는 무언가가 완벽하게 무시되거나 반박되고 있을 때는 분명히 있다. 그리고, 이런 것을 피하기 위해 범위를 좁히거나 ( eg. 평화 상태에서의 살인은 나쁘다. ->  전쟁 중에는 살인이 허용되므로 범주에서 제외 ) 모든 범위를 가르키지 않는 방식으로 (eg. "대게" 살인은 나쁘다. -> 전쟁에서 벌어지는 살인 행위에 대한 가치판단을 회피 ) 글을 쓰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요령을 점점 잘 배우게 된다면 거의 무적에 가까운 논리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런 문제는 잠시 접어두고, "가치들의 충돌이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모든" 충돌 상황을 상정하고 비교하고, 가치들의 경중을 따져 가치 판단을 내릴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한 번 해보자. 아마도 그러지 못할 것이다. 개중에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해본 가치가 갑자기 튀어나올 수도 있는 것이며, 가치에 대한 평가가 잘못되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내가 글을 안 쓰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이것일 것이다. 나는 지금 내 지적 수준으로는 유의미한 글을 써낼 자신이 없으며, 제대로된 가치 판단을 이끌어낼 자신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편협한 시선으로 전체를 바라보기 때문에, 전체적인 것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것이 이 기나긴 글이 설명하려고 했던 것이다.


아 그렇다면, 나는 왜 이 글을 쓰고 앉아있는 것인가? 이 글 조차도 그렇게 좋은 가치판단을 한 거 같지 않으며, 전제들이나 뒷받침하는 논증들은 그렇게 썩 좋아보이지 않는데! 아마, 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이 정도면 "유의미한" 이야기를 이끌어 낼 수 있지 않는가라는 생각을 했기 떄문이다. 사실, 2시간 전만해도 vim에 관한 자료들을 찾으면서 스터디를 빙자한 주입식 강의에 쓸 vim을 왜 써야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었고, 그러다가 어떤 블로그에서 내가 아예 모르는 플러그인들을 찾아내면서 상당히 짜증이 많이 나 버렸다. "강의자라는 인간이 남들은 다 쓰고 있는 플러그인을 쓰지를 않고 있었다니!"라는 생각과 "이 상태라면 vim 이후에 가르치게 될 리눅스 전반적인 것은 또 어찌 해쳐나갈 수 있는가"라는 생각이 번뜩 들게 되고 만 것이다. 그 블로그에 적힌 글들 하나하나를 읽으면서, 나는 왜 모르는데 왜 저 사람은 알고 있는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겸 그 사람의 과거로의 항해를 감행하였고, 결과적으로 한 꺠달음을 얻고 이 블로그에 이딴 글이나 쓰게 되었던 것이다.


사실, 컴퓨터 공학이라는 학문이 이런 저런 학문들을 얼기설기 섞어서 만든 프랑켄슈타인과 같은 것이라는 건 잘 알고 있었던 것이며, 그 중에 "언어"라는 것에 종속되어 있으면서도, 뭔가 "기계"에 종속되어 성능에 묶여있는 무언가를 보게 되었는데, 대부분 수학자나 물리학자나 아님 컴퓨터를 좋아하는 누군가가 컴퓨터 공학에 기여한 부분이 의외로 많다는 것과 대부분 컴퓨터가 쓰이는 현장에서 컴퓨터 공학/과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설 수 있는 자리는 그렇게 넓지 않다는 것이였다. 이는, 아마도 컴퓨터라는 것이 증기 기관과 같이 인간의 노동력을 경감시키는데 동원된 무언가이며, 우편을 전자 메일이, 거대한 복식 부기 장부를 ERP가, 계산자를 윈도우 계산기가 대체를 하였다는 것만 봐도 컴퓨터 프로그래머에 대한 회의가 많이 든다. 대부분, 프로그래머들이 하는 일들은 현실에 존재하는 무언가를 "대체"해 나가는 작업의 연속이고,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기 보다는 기존에 있었던 것을 변형해서 새로운 형태로 만들되 기존의 목적을 버리지는 않는 방향으로 무언가를 계속 만든다는 것이다. 이는 아마도, 인간이라는 존재가 갖고 있는 근원적 한계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앞서 말한 증기 기관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 중요하다.


증기 기관이 그러하였던 것처럼 새로운 산업혁명을 부르고는 있지만, 돗단배를 증기선으로, 마차를 자동차로 바꾼 것이 증기 기관이 한 역활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것이 아마도 증기 기관이 한 일의 전부였으리라. 증기 기관차가 등장하였고, 자동차와 증기선으로 인해서 활동 범위가 늘어났고, 대량 생산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였지만, 여하튼 그것은 증기 기관이 세상을 바꾼 것이기도, 증기 기관을 이용한 사람들이 바꾼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마도 증기 기관 기술자라는 명칭을 달고 나는 증기 기관을 잘 다룰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나, 증기 기관의 효율을 개선하는 일에 매진한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증기 기관을 통해 바꾼 사회"에 대한 이야기와는 약간 거리가 떨어진 이야기이기도 하다.


학문 공동체에서 배타적이고 자신들만이 쓰는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는 경우를 많이 봤다. 경제학이나, 물리학이나, 사회학이나, 이런 저런 학문들에서 자신들의 방법론을 제외한 다른 방법론을 배척을 하는 경향은 엄청나게 큰 편이다. 그리고 간혹 가다, 이런 이단적인 의견을 배척하는데 실패하면, 그 공동체는 와해되거나 완벽하게 사장되고, 새로운 공동체가 원래 있던 자리를 차지하는 일은 흔한 일이였다. 빈 학파나, 교과서에서 등장하는 플로지스톤이라던지 이제는 비주류적인 주장이 되어버린 것들이 모두 그러할 것이다. 이는 학문 공동체만의 일이라고 할 수 없고, 인간 본연의 특징이라고 봐야될 것 같다.


사실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에 대해 계속 드는 생각은 과연 프로그래머가 된다는 것이 정말 의미 있는 일인가? 라는 것이다. 아니, 지금 프로그래머라고 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나 행동 패턴은 과연 중장기적으로 프로그래밍이라는 행위와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이 유지 될 수 있고,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가진 무언가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바꿔 말할 수도 있겠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많은 글들을 보면서, 개발 방법론이라던지, 프로그램의 철학이라던지, 혹은 디자인 패턴, 그리고 외부의 사람들 (디자인, 경영, 그리고 다른 학문에 속한 사람들) 과의 소통 방식을 보면서 점점 느끼는 것은 도구에 너무 집착을 한다는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언어의 형태를 띈 수학적 요소가 가미가 된 뭔지 모르지만 영어로 서술이 되는 무언가"라고 할 수 있겠지만, 어쩄든 사실 요즘 느끼는 것들이 그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이 상황에 대해서 제대로 반박도, 더 긴 논의도 할 수 없다. 단순히 요즘 느껴지는 느낌만 간단하게 설명을 했을 뿐이다. 이러한 말을 덧붙임으로 책임회피를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고, 피드백도 받고 뭐 이런저런 이야기를 더 하고 싶지만 (사실 이 글을 볼 사람도 거의 없다는 것부터가 문제다) 아마도 여기서 글을 마쳐야할 거 같다. 새벽 4시 30분 쯤에 밤쯤 잠에 취해서 글을 더 쓸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내 느낌을 또렷히 살려서 무언가를 쓸 수 있는 것 같지도 않다.


하지만, 내가 느끼고 있는 무엇 만큼은 적어야할 거 같아서 적는다. 무언가 분명히 잘 못된 느낌은 아직도 내 마음속을 떠나지 않는다.